선화

선화

다른 표기 언어 禪畵

요약 전형적인 것은 선에 몰입한 사람이 득도의 순간에 스승이나 경전의 도움 없이 갑작스럽게 느낀 직관적·개별적인 깨달음을 넓은 화면에 단색의 먹을 사용하여 암시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수묵위주의 감필로 간일하고 조방하게 그리는 것이 상례이다. 일반 수묵화의 발전과 밀착되어 전개되었으며, 달마를 비롯한 조사상·출산석가·한산·습득·풍간·나한·시우도 등이 주로 다루어졌다. 중국인들은 선화를 특별히 높이 보지 않았으나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무로마치 시대에 선화와 그 배경을 이룬 선종사상은 유례 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회화·건축·꽃꽂이, 그리고 하이쿠에서 다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분야에 자극제가 되었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선승들과 문인화가들의 교양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명상을 중요시하는 선종의 사상과 그것에 관련되는 것을 소재로 삼았다.

선종은 원래 인도의 승려 보리달마가 중국에 처음 들여왔지만 가장 중국적인 불교종파로 발전했다. 그 이래 선종의 이상은 빈번히 특유의 예술양식으로 표현되었다. 그중에서도 전형적인 것은 선(禪)에 몰입한 사람이 득도의 순간에 스승이나 경전의 도움 없이 갑작스럽게 느낀 직관적·개별적인 깨달음을 넓은 화면에 단색의 먹을 사용하여 암시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채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통적인 불교회화와는 달리 수묵위주의 감필(減筆)로 간일(簡逸)하고 조방(粗放)하게 그리는 것이 상례이다.

일반 수묵화의 발전과 밀착되어 전개 되었으며, 달마(達磨)를 비롯한 조사상(祖師像)·출산석가·한산(寒山)·습득(拾得)·풍간(豊干)·포대(布袋)·나한(羅漢)·시우도(十牛圖) 등이 주로 다루어졌다. 중국에서는 남송대에 목계(牧谿)·옥간(玉間)·양해(梁楷)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색인 :목계법상, 양해). 선화는 선종에서 추구하는 개인적 성취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단일한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초기 선화가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쓰촨[四川] 지방의 관휴(貫休)와 석각(石恪)을 비롯한 오대(五代 : 907~960) 시기의 거장들을 들 수 있다. 그밖의 유명한 선화가로는 남송(南宋 : 1127~1279) 시기의 목계와 양해 등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당시의 전통 산수화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나, 선종에서 영감을 받은 즉흥적인 그림을 그린 인물로도 알려졌다. 그 그림들은 선종의 위대한 조사(祖師)들의 초상화나 과일·화초 등을 단순히 묘사한 것들이다.

선화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암시적인 표현을 하지만, 때로는 흰옷을 걸친 관음보살상이라든지 치밀한 선과 색채로 처리한 선종의 대가 및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을 담기도 한다. 송대 이후 중국화가들은 종종 선종사상을 접하기는 했어도 그 체험과 직결되는 내용이 그림에 표현된 것은 거의 없다. 중국인들은 선화를 특별히 높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선화의 특출한 수묵필치는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 1338~1573]에 선화와 그 배경을 이룬 선종사상은 유례 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회화·건축·꽃꽂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하이쿠[俳句]에서 다도(茶道)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분야에 자극제가 되었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선승들과 문인화가들의 교양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묵의 〈양류관음도〉가 이미 고려 중기에 한생(韓生)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공민왕은 달마도와 출산석가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 조선 중기 이전의 유작으로는 이상좌(李上佐)의 전칭작품과 이정(李霆)·이징(李澄)·김명국(金明國)·한시각(韓時覺)의 작품들이 알려져 있다. 특히 김명국한시각의 선종화는 일본의 선화와 유사하여 관심을 끈다.

조선 후기에는 도석인물화의 유행과 더불어 적지 않게 그려졌으며 윤두서(尹斗緖)·윤덕희(尹德熙)·심사정(沈師正)·김홍도(金弘道)·김득신(金得臣)·이수민(李壽民)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의 화풍은 대개 선종화 본래의 특질에 자신의 개성적인 양식을 곁들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는데 특히 심사정은 지두화(指頭畵) 기법으로 그렸다. 조선 말기에는 장승업(張承業)에 의해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晋)을 통해 근대 화단으로 계승되어 지운영(池雲永)·김은호(金殷鎬)·노수현(盧壽鉉) 등이 유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