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선암사

다른 표기 언어 仙巖寺 동의어 사적 제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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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8)

요약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신라 542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에 의천이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60년에 재건을 시작했다. 1701년에 불조전이 완성되었고, 대웅전의 개수 및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했고, 1823년 다시 화재가 나자 해붕 등이 중수했다.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목차

접기
  1. 역사
  2. 주요 문화재
  3. 세계문화유산
  4. 선암사대각국사진영
  5. 선암사삼층석탑
  6. 선암사영산회상도
  7. 선암사화엄경변상도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역사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 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1660년(조선 현종 1)에 경잠·경준·문정이 재건을 시작했고, 1698년(숙종 24)에는 호암 약휴선사가 원통전을 짓고 그 안에 목조관음보살상을 봉안했다.

이어 1701년에는 약 30년간에 걸쳐 완성된 불조전에 과거 53불을 비롯한 60여 구의 목조불상을 봉안했으며, 대웅전의 개수 및 선암사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불이 나서 건물들이 소실되자 곧 상월이 중건했고, 1823년 다시 불이 나자 해붕·눌암·월파 대사 등이 중수하여 대규모 가람을 형성했다. 이 절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주요 문화재

6·25전쟁 때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을 비롯하여 원통전·팔상전·천불각·장경각·강선루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과 '천인'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해남 대흥사이다.

선암사대각국사진영

1805년 작. 보물 제1044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28cm, 가로 104cm. 약간 비스듬히 의자 위에 앉아 있으며 오른손은 의자 손잡이 위에 올려 놓고, 왼손으로는 긴 주장을 잡고 있다.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큰 편이며, 큼지막하고 시원스러운 눈·코·귀와 함께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까지 표현하여 고승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몸에는 녹색의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색의 가사를 걸치고 있다. 이 영정은 송광사의 보조국사 진영(1780)과 함께 연대를 알 수 있는 드문 예로서, 초상화의 양식적 변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의천)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화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화

선암사삼층석탑

선암사삼층석탑
선암사삼층석탑

보물 제395호. 높이 470cm. 대웅전 앞에는 규모가 같고 양식이 동일한 석탑 2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이루어졌다. 하층기단은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4개의 긴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하층갑석의 윗면은 약간 경사가 져 있으며 중앙에는 3단 굄이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도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상층갑석은 하층갑석과 마찬가지로 밑에는 부연이 있고, 비스듬하게 경사가 져 있는 윗면 중앙에는 3단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신의 각 면에는 우주만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이며, 처마 끝이 편평하며 비교적 수평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원형의 석재들이 남아 있는데, 원래 석탑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986년 8월 해체·복원할 때 동쪽에 있는 탑 1층 탑신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청자·백자 등이 출토되었으며 보물 제955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영산회상도

1765년 작.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590cm, 가로 394cm. 대웅전의 주존인 석가불의 후불탱화로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상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표현된 석가불은 머리 정상에 계주만 장식되었으며 비교적 둥근 얼굴에 가는 눈, 작은 입, 나선형의 콧수염 등에서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넓고 각이 진 어깨에는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쳤는데 가슴부분이 많이 드러나고, 그 위로 주름잡힌 승각기가 보인다. 광배는 약간 네모진 형태로 전신을 감싸고 있으며,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효과를 준다.

이 본존불의 주위에는 문수·보현의 협시보살상과 범천·제석천·사천왕·인왕 등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는데, 석가불에 비해 훨씬 작게 표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위로 올라갈수록 각 존상의 크기도 작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군도식구도법이나 본존불의 얼굴과 신체의 비사실적인 표현, 머리 위의 계주장식, 장식성이 강한 광배 형태 등은 조선 후기 불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선암사화엄경변상도

1780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79cm, 가로 248cm. 화엄경의 내용 가운데 7처9회의 설법장면을 그림으로 쉽게 표현한 후불탱화이다. 화면의 제일 윗부분인 하늘에는 4번의 설법장면을, 지상에는 5번의 설법장면을 수미산의 형태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구름과 분신불을 표현하여 공간감을 나타냈으며 그 밑에 찰종(세계종)이라는 글씨와 큰 연못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화면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즉 장엄한 연화장 세계와 7군데에서 열린 9번의 설법, 법을 전수받기 위한 선재동자의 구도자 모습이 질서 있게 표현되어 있다. 청색·홍색·녹색을 많이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색채가 강렬하고 선명하지만 다소 어두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구도나 색채 등은 송광사의 화엄경변상도(1770)와 거의 유사하여 같은 계통의 화사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화기를 통해 1780년(정조 4)에 금어 쾌윤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선암사 화엄경 변상도
선암사 화엄경 변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