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트족

서고트족

다른 표기 언어 Visigoth

요약 고트족의 일파.

서고트족(Visigoth)의 이동경로
서고트족(Visigoth)의 이동경로

게르만족 중 가장 중요한 부족의 하나인 서고트족은 4세기에 동고트족에서 분리되었고 로마 영토를 거듭 침범했으며, 갈리아와 스페인에 거대한 왕국을 세웠다.

서고트족은 다키아에 정착한 농경부족이었는데 376년 훈족의 공격을 받고 도나우 강을 건너 로마 제국으로 쫓겨왔다. 이들은 로마 제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받았지만 로마 관리들의 착취를 견디다 못해 곧 반란을 일으켜 발칸 반도의 로마 속주들을 약탈했으며, 일부 동고트족도 이들을 도왔다. 378년 8월 9일에 이들은 아드리아노플 외곽의 평원에서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의 군대를 쳐부수고 황제를 죽였다. 그후 4년 이상 이들은 정착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382년 10월에 발렌티니아누스의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 1세는 서고트족을 연방 형태로 모이시아에 정착시키고, 모이시아의 땅을 그들에게 주는 대신 국경방어의 의무를 부여했다.

서고트족은 395년까지 모이시아에 남아 있었다. 그해에 족장 알라리크는 부족을 이끌고 모이시아를 떠나, 처음에는 남쪽의 그리스로 들어갔다가 다음에는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들은 401년부터 이탈리아를 거듭 침략했다. 이들의 약탈은 410년의 로마 약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같은 해 알라리크가 죽었고 아타울푸스가 그 뒤를 이었다. 아타울푸스는 서고트족을 이끌고 처음에는 갈리아 남부에 정착했다가 그후 스페인으로 옮겼다(415).

418년에 이들은 로마 귀족이자 나중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3세가 된 콘스탄티우스의 부름을 받고 스페인을 떠나, 가론 강 및 루아르 강 하류 사이의 로마 속주 아키타니아세쿤다에 로마의 연방 형태로 정착했다. 아키타니아세쿤다에 정착한 직후 족장 왈리아가 죽고, 테오도리크 1세가 그 뒤를 이었다. 테오도리크 1세는 451년에 카탈라우니아 평원 전투에서 아틸라와 싸우다가 전사할 때까지 서고트족을 다스렸다. 테오도리크 1세는 진정한 의미에서 군주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서고트족 지도자였다.

서고트족은 영토를 넓히려고 끈질기게 애썼고 그 과정에서 로마 제국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았지만, 475년에 테오도리크의 아들인 유리크가 독립왕국을 선언할 때까지는 로마 제국의 연방으로 남아 있었다. 유리크는 또한 그 자신과 전임자들이 공포한 법률을 성문화했는데 라틴어로 씌어진 이 법전의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툴루즈에 수도를 정한 갈리아 왕국이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때도 유리크 시대였다. 그때의 영토는 루아르 강에서 피레네 산맥과 론 강 하류까지 뻗어 있었고 스페인의 대부분 지역을 포함했다.

열렬한 아리우스파인 유리크가 죽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알라리크 2세가 부왕의 뒤를 이었다. 알라리크 2세는 507년 푸아티에 근처의 부예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클로비스가 이끄는 프랑크군에게 패배, 전사했다. 부예 전투에서 패배한 결과, 서고트족은 피레네 산맥에서 론 강까지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좁은 땅인 셉티마니아를 제외하고는 갈리아에 있는 영토를 모두 빼앗겼다. 프랑크 왕국은 나르본을 수도로 삼은 셉티마니아를 서고트족에게서 빼앗으려고 여러 번 애썼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후 서고트족은 톨레도를 수도로 삼아 셉티마니아와 스페인 대부분 지역을 다스리다가 711년에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