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신화

삼성신화

다른 표기 언어 三姓神話

요약 제주도의 고(高)·양(良:지금의 梁)·부 3성씨의 시조신화.

탐라(耽羅)의 개국신화이기도 하다. 〈고려사〉 권11, 〈동국여지승람〉, 〈탐라지〉, 〈영주지 瀛洲志〉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무가나 전설로도 구전되고 있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 3신인(三神人)이 솟아났다. 이들은 사냥을 해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바닷가에 밀려온 나무함을 발견해 열어보았더니 돌함과 사자(使者)가 있었다. 돌함을 열자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는 '나는 일본국 사자인데 우리 임금이 세 딸을 낳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神子) 셋이 탄강(誕降)하여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다 하시며 세 따님을 보내셨으니 배필을 삼고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말한 뒤 구름을 타고 떠났다. 세 사람은 나이순대로 장가 들고 활을 쏘아 각자 거처할 곳을 정한 뒤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길렀다."

이 신화는 한국의 건국신화에 천강(天降)·난생(卵生) 등의 화소(話素)가 흔히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시조가 땅속에서 솟아나오고 상자 모양의 배를 타고 왔다는 등의 남방신화적 요소가 나타난다. 또한 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넘어가는 단계와 씨족사회가 부족국가로 바뀐 배경이 담겨 있다.

3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제주시 이도동에 남아 '삼성혈'로 불린다. 그들의 거처였다는 제일도·제이도·제삼도는 지금의 '혼인지'(婚姻址)라는 못이며, 거처할 곳을 정할 때 쏜 화살을 맞았다는 돌 등의 증거물들이 제주도 곳곳에 널려 있다. 3신인에 대한 제사는 조선 중종 때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삼성혈에 울타리를 치고 비석과 홍문(紅門)을 세워 후손에게 제사 지내게 한 이래 지금까지 유교식으로 지내고 있다.

현재는 춘추제(春秋祭)와 건시제(乾始祭)를 행하고 있다. 춘제는 4월 10일, 추제는 10월 10일에 3씨족이 제사 지내며 건시제는 12월 10일 도지사와 도내 기관장 및 유지들이 제사를 지낸다. 삼성혈은 성역화되어 있으며 사적 제134호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