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계

사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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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53년 4월 창간되어 1970년 5월 205호로 폐간되었다.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은 장준하였으며 집필자들은 대학교수·종교인·언론인·정치인·문인 등이었고 독자는 대부분 대학생·지식인 등이었다.
창간취지는 6·25전쟁으로 정신적·물질적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민족의 앞길을 예비한다는 것이었다. 제1공화국 때부터 독재정치를 철저히 비판한 잡지로 유명하며, 1959년 2월호의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가 대표적인 글이다.
1961년 7월호에 실린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가 문제가 되어 발행인이 연행되고 판매봉쇄, 반품공세, 세무사찰, 제작 관계자들에 대한 감시 등의 숱한 고초를 겪었다.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폐간처분을 받았다.

장준하
장준하

1953년 4월 1일 창간되어 1970년 5월 1일 통권 20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은 장준하(張俊河)였다. 1955년부터 주간과 편집위원제를 두었는데, 초대 주간은 김성한이 맡아보았고 편집위원으로 홍이섭·정병욱·안병욱·강봉식 등이 참여했다.

집필자들은 대학교수·종교인·언론인·정치인·문인 등이 대부분이었다. 체재는 국판 200쪽 안팎이었으며 특집호일 경우 400쪽으로 늘렸다. 원래 문교부 산하에 있는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던 〈사상〉을 속간하려는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나 국민사상연구원의 편집책임자였던 장준하가 〈사상계〉라는 독자적인 제호로 바꾸어 발행했다. 창간취지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정신적·물질적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민족의 앞길을 예비한다는 것이었다. 제1공화국 때부터 독재와 정치악을 철저히 비판한 잡지로 유명하며, 1959년 2월호에 실린 권두언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는 대표적인 글이다.

1961년 7월호에 실린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가 문제가 되어 발행인이 연행되고 판매봉쇄, 반품공세, 세무사찰, 제작 관계자들에 대한 감시 등의 숱한 고초를 겪었다. 1962년 8월 장준하가 필리핀에서 주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뒤로 정부의 부정을 더욱 과감하게 알렸다. 독자의 대부분은 대학생·지식인 등이었고, 정기구독자가 1960년대초 1만 6,000명에 이르렀다. 1955년 신인상을 제정해 박경수·강용준·이청준·강계순 등의 문인을 배출했고, 그밖에 동인문학상·논문상·번역상 등을 제정해 시상하기도 했다.

1961년 통권 100호 기념호를 펴낸 외에도 여러 차례 특집호를 펴냈으나, 재정난이 계속되는 와중에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 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폐간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