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벨리우스주의

사벨리우스주의

다른 표기 언어 Sabellianism 동의어 양태론적 일위설, 樣態論的一位說, 양식적군주신론, 樣式的君主神論

요약 발전된 형태의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을 표방한 그리스도교 이단(→ 단일신론).

로마의 사제로 추측되는 사벨리우스(217경~220경 활동)가 제창했다.

사실상 사벨리우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그에 관한 가장 상세한 정보는 단일신론을 반대하는 동시대의 로마 신학자 히폴리토의 편견에 찬 글에 담겨져 있다. 로마에서는 단일신론자(양태론자)들과 신격 안에 항구적인 구별(위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활기찬 논쟁이 있었다. 하느님의 단일신격(하느님의 절대 단일성과 불가분리성)에 관심을 가졌던 단일신론자들은 그런 구별이 궁극적이며 항구적이라는 견해에 반대했다(→ 신성). 사벨리우스는 신격은 단일체(monad)이며 3가지 작용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명시적으로 가르쳤다. 즉 창조에서는 성부로, 구속에서는 성자로, 성화(聖化)에서는 성령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교황 갈리스토는 처음에는 사벨리우스의 가르침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후에는 사벨리우스를 정죄하고 파문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30년 후에 다시 리비아에 나타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의 반대를 받았다. 4세기에 아리우스는 사벨리우스주의를 지지한 자신의 주교를 공박했고, 아리우스주의 논쟁 때 니케아 정통교리의 지지자들(니케아 신조에서 주창된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비난을 가했다. 정통파들이 성부와 성자 실체의 단일성을 역설하자 아리우스파는 정통파가 신격 내의 위격의 구별을 부정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375년경 사벨리우스주의는 네오카이사리아에 다시 나타났고 바실리우스의 공격을 받았다. 스페인에서는 프리스킬리아누스가 사벨리우스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단일체 교리를 주장했던 것 같다(→ 아리우스주의).

종교개혁 때는 사벨리우스주의가 스페인의 신학자이며 의사인 미겔 세르베투스에 의해 재정립되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와 성령은 하나의 신격, 즉 성부의 대행적 형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18세기에는 스웨덴의 신비주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에마누엘 스베덴보리가 역시 이 교리를 가르쳤고, 새 교회(New Church)를 설립한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