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

브루투스

다른 표기 언어 Marcus Junius Brutus 동의어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브루투스, Quintus Servilius Caepio Brutus
요약 테이블
출생 BC 85
사망 BC 42, 마케도니아 필리피 근처
국적 로마

요약 BC 44년 3월 로마의 딕타토르(독재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공모자들의 지도자.
Quintus Caepio Brutus라고도 함.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BC 77 죽음)의 아들인 그는 삼촌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의 양자가 되어 퀸투스 카이피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BC 49년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폼페이우스군에 가담했지만 이듬해 폼페이우스가 죽고 나서 카이사르에게 용서를 받았다.

BC 46년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키살피나의 총독이, BC 44년에는 로마 시의 프라이토르가 되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전제적인 통치에 분노해 공화정의 복구를 갈망했으므로 카이사르를 암살하려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음모에 가담했다. 그가 지닌 영향력 덕분에 수십 명의 다른 원로원 의원들도 이 음모에 가담했다.

카이사르 암살 후 5개월 만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카이사르파(派) 군대의 사령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쫓겨나 마케도니아로 가서 안토니우스에 대항할 군대를 일으켰다. BC 43년 2월 원로원은 그들에게 동부지역 최고사령관직을 주었다. 브루투스는 필리피 전투의 첫번째 싸움에서 옥타비아누스(나중에 아우구스투스)가 이끄는 카이사르파 군대를 물리쳤으나 3주 뒤의 2번째 싸움에서(BC 42. 10. 23)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게 격파당했다. 공화정 재건의 이상이 무너졌음을 깨달은 그는 자살했다.

브루투스는 동시대인들로부터는 위엄과 이상주의로 존경받았지만 속주민을 잔혹하게 착취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에서 묘사한 브루투스의 모습은 실제보다 미화된 것이다. 그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후 추도사에서 한 연설 중 "카이사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구절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스토아 학파로 많은 철학논문과 문학작품을 썼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유명한 웅변가 키케로와 주고받은 서신집 9권 중 2권만이 현존하고 있을 뿐이다. 래던이 쓴 〈마르쿠스 브루투스 Marcus Brutus〉는 1939년에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