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닝

브라우닝

다른 표기 언어 Elizabeth Barrett Browning
요약 테이블
출생 1806. 3. 6, 잉글랜드 더럼 근처
사망 1861. 6. 29, 이탈리아 피렌체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시인.
결혼 전 성은 Barrett.

연애시 〈포르투갈인이 보낸 소네트 Sonnets from the Portuguese〉로 명성을 얻었다. 남편은 로버트 브라우닝이다.

에드워드 배렛 몰턴(나중에는 에드워드 몰턴 배렛)의 큰딸로 태어났다. 소녀시절의 대부분을 우체스터셔의, 몰번 구릉이 보이는 시골집에서 아주 행복하게 보냈다. 그러나 15세 때 척추를 다쳐서 심하게 앓았고, 이때문에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 1832년 그녀의 가족은 데번 주 시드머스로 이사했고, 1836년에는 런던으로 가서 1838년 윔폴가 50번지에 거처를 정했다.

런던에서는 여러 정기간행물에 기고했으며, 1838년 처녀시집 〈치품천사들 외 The Seraphim and Other Poems〉를 펴냈다. 건강 때문에 그뒤 3년 동안 데번 주 토키에서 지냈으나, 남동생 에드워드가 물에 빠져 죽은 뒤로는 가깝게 지내는 몇몇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문단에 잘 알려져 있었고, 1844년에 나온 2번째 시집 〈E. 배렛 배렛의 시집 Poems, by E. Barrett Barrett〉은 열광적으로 읽혔다.

1845년 1월에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에게서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받았다. "친애하는 배렛 양. 귀하의 시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귀하의 시집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배렛 양 당신을 사랑합니다." 초여름에 두 사람은 만났다. 이들 연애의 진전 상태는 주고받은 편지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엘리자베스가 무서워하던 그녀의 독재적인 아버지에게는 철저한 비밀로 부쳐졌다. 〈포르투갈인이 보낸 소네트〉(1850)에는 결혼하기를 주저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으나 두 사람은 1846년 9월 12일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녀는 결혼한 뒤에도 1주일간을 더 친정에서 살았다. 그뒤 브라우닝 부부는 피사로 갔으며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1856년 죽을 때까지 딸을 용서하지 않았다.

피사에 머무는 동안 미국의 노예제도에 항의하는 시 〈필그림스 포인트에서 도망하는 노예 The Runaway Slave at Pilgrim's Point〉를 썼다. 그뒤 두 사람은 피렌체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1849년 외아들 로버트 위더만 배렛을 낳았다. 브라우닝 부부는 1851, 1855년에 런던을 방문했는데, 엘리자베스는 2번째 방문중에 최대의 야심작 〈오로라 리 Aurora Leigh〉(1857)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긴 무운시로서, 한 처녀와 박애주의자의 복잡하고 멜로드라마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이 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의 호평을 받지 못했다.

말년에 그녀는 심령술과 비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가장 가까운 친구들까지 놀랄 정도로 이탈리아의 정치문제에 집착해 거의 모든 정열과 관심을 쏟았다. 피렌체인들이 동정을 받도록 하기 위해 〈카사 구이디의 창문들 Casa Guidi Windows〉(1851)을 썼으며, 나폴레옹 3세의 청렴함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시집 〈의회에 바치는 시 Poems Before Congress〉(1860)에 실린 〈국가에 저주를 A Curse for a Nation〉은 영국을 비난한 것이라고 오해받았으나 사실은 미국의 노예제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1861년 여름 심한 독감에 걸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