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알로

부알로

다른 표기 언어 Nicolas Boileau(-Despréaux)
요약 테이블
출생 1636. 11. 1, 프랑스 파리
사망 1711. 3. 13,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시인·문학평론가.

프랑스와 영국 문학에서 고전주의의 기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 당대의 유력한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법원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다르쿠르 중학교에서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자, 이미 문필가로 기반을 잡은 그의 형 질 부알로는 문학 작품을 써보라고 동생을 격려했다.

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저명 인사들을 공격하는 풍자시(1658경)를 써서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것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이 원고를 입수한 인쇄업자가 1666년에 그것을 출판하자, 부알로는 원래의 시를 상당히 부드럽게 다듬어 진본을 내놓았다(1666. 3). 이듬해 그는 영웅시풍 서사시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작품의 하나인 〈보면대(譜面臺) Le Lutrin〉를 썼는데, 이 작품은 보면대를 예배당의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두 고위 성직자가 벌이는 말다툼을 다루고 있다. 1674년에 그는 운문으로 된 교훈적 논문인 〈시학 L'Art poétique〉을 발표하여, 고전주의 전통에 따라 시를 짓는 규칙을 제시했다. 그당시 이 저서는 고전주의의 원리를 명확히 규정한 안내서로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이 저서는 영국 신고전주의의 전성기인 앤 여왕 시대에 새뮤얼 존슨, 존 드라이든, 알렉산더 포프와 같은 시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저서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고전주의의 안내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당시의 문학논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1677년에 부알로는 국왕의 사관으로 임명되어 15년 동안 문학 논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1684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부알로는 문단이 이른바 고대파와 근대파(→ 신구논쟁)로 분열된 1692년에 다시 논쟁에 참여했다.

부알로는 여성을 근대파의 지지자로 간주하고, 여권 확장론에 반대하는 풍자시 〈여성에 반대하여 Contre les femmes〉를 써서 〈풍자시 제10편〉(1694)으로 발표했으며, 이어서 유명한 〈신의 사랑에 대하여 Sur l'amour de Dieu〉를 〈서한시 제12편〉(1698)으로 발표했다.

부알로는 고전주의 희곡과 시의 원칙을 창안하지 않았지만 그랬던 것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었고 그 자신도 구태여 이런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고전주의 희곡과 시의 원칙은 그 이전의 프랑스 작가들이 이미 고안해낸 것이었고, 부알로는 그것을 인상적이고 힘찬 표현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또한 그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자 롱기노스가 쓴 논문 〈숭고함에 관하여〉를 번역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번역서는 낭만주의 미학의 주요원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