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만

보어만

다른 표기 언어 Martin Bormann
요약 테이블
출생 1900. 6. 17, 독일 할버슈타트
사망 1945. 5
국적 독일

요약 독일 나치당의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아돌프 히틀러의 측근.

청년시절에는 범게르만주의를 소리 높여 주장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익계인 독일 의용군 활동에 참여했다. 1924년 정치적 암살에 가담하여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 독일 국가사회당에 합류했다. 1926년 튀링겐에서 나치 신문 책임자가 되었고, 1928년 이후 '돌격대'(Sturmabteilung)의 고위사령관을 지냈다.

1933년에는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참모장이 되었다. 헤스가 스코틀랜드로 망명한 뒤 그를 이어 1941년 5월 12일 히틀러에 의해 당 총비서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치당 행정기구의 최고지위에 올랐으며 음모와 당의 내분, 히틀러의 약점과 기행을 교활하게 이용함으로써 막후에서 활동하는 제3제국 최강자가 되었다. 모든 입법활동과 당내 인사에 관여했으며 안보와 관련된 국내정책에도 광범한 영향력을 미쳤다. 다른 사람이 히틀러와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통제하고 그의 일정, 시간약속까지 관리함으로써 히틀러와 부하들의 교류를 끊었다. 그는 나치주의의 확고한 수호자로서, 유대인과 슬라브족에 대한 박해와 말살정책을 열렬하게 옹호했고 노예노동 계획을 확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히틀러 사망 직후 죽었거나 숨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1945년 8월 29일 다른 나치당 지도자와 더불어 전범으로 기소되어 1946년 10월 1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전범재판소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중에 나온 보고서, 특히 1960년대에 나온 보고에 따르면 그는 탈출하여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1973년초 베를린의 한 법률전문가는 1972년 12월 베를린 서부의 건물공사중 나온 2구의 시체 가운데 하나가 '거의 틀림없이' 보어만이라고 발표했으며, 1973년 4월 11일 독일정부는 그의 죽음을 공식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