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루이 베르톨레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

다른 표기 언어 Claude-Louis, Comte Berthollet
요약 테이블
출생 1749. 12. 9, 프랑스 앙시 근처 탈루아르
사망 1822. 11. 6, 아르쾨유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화학자.

처음으로 화학반응이 완결되는 것은 부분적으로 반응물의 질량에 의존한다는 것에 주목하여 질량작용의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접근했다. 원소들이 모든 비율로 결합한다는 결론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로 인한 화학자 조제프 루이 프루스트와의 논쟁으로 일정성분비의 법칙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후에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조교가 되어 그를 도와 화학명명법을 개정했다. 사이안화수소산(청산)과 황화수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산소가 모든 산의 필수원소라는 라부아지에의 주장을 반박했다. 1785년 암모니아 조성을 발견했으며, 표백제(漂白劑)로서 염소를 사용했다.

프랑스 혁명 동안 여러 과학위원회에서 일했고, 1792년 국립조폐국 국장이 되었다. 1794년 농업국 국장과 폴리테크니크 및 사범학교의 교수가 되어 아카데미를 국립학술원으로 개편(1795)하는 일에 참가했다. 1796년에는 파리 국립미술관에 소장할 고대 및 근대 예술품을 선별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파견된 위원회 회장이 되었다.

1798년의 이집트 원정에서는 나폴레옹을 수행했는데 그곳에서 국립학술원의 모델이 될 학술원을 세우는 일을 도왔고, 그의 저서 〈정화학(靜化學) 소론 Essai de statique chimique〉(1803)에서는 화학평형에 관한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광석에서 철을 뽑아 강철로 바꾸는 법을 확정했다. 그가 합성한 염소산포타슘은 의도와 달리 화약의 초석(硝石)을 대체하지 못했지만, 유색 불꽃용 화약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평의원이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훌륭한 관리였으며, 프랑스 제국하에서는 백작이 되었다. 은퇴한 후에는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재능있는 과학자들의 모임을 후원했는데 여기의 토론 내용은 1807~17년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