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히센

베니히센

다른 표기 언어 (Karl Wilhelm) Rudolf von Bennig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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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24. 7. 10, 하노버 뤼네부르크(지금의 독일에 있음)
사망 1902. 8. 7, 하노버 베니히센
국적 독일

요약 하노버 왕국의 정치가.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통일안을 지지한 자유주의자였다.

하노버 왕국 육군소장의 아들로 괴팅겐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공무원이 되었으나 1856년 하노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공직에서 물러났다.

종교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했던 그는 자유주의 야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859년에는 요하네스 폰 미켈과 함께 '독일민족연합'(Nationalverein)을 창립해 의장직을 맡았다. 이 기구의 목표는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을 통일하자는 것과 전(全)독일 의회를 만들고 오스트리아의 비독일민족을 배제하자는 것이었다. 1867년 독일민족연합이 해산된 뒤에는 국민자유당 창립에 참여했으며 국민자유당은 1870년대에 제국의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7주전쟁(1866) 때 하노버 왕국이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하는 것을 막아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오스트리아 동맹이 패배한 뒤에는 하노버가 별개의 영방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노버가 프로이센의 한 주로 편입함에 따라 프로이센 하원의원 겸 북독일연방 의회 의원이 되었으며, 새로이 탄생한 하노버 주의 임시 정부를 맡아달라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의 요청을 거절했다.

1871~97년에 4년 동안의 은퇴기(1883~87)를 제외하고는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고 1873~79년에는 의장을 맡기도 했다. 1877년 비스마르크는 그를 내각에 기용하려 했으나 황제 빌헬름 1세가 반대하고 베니히센도 2명의 당 동료와 함께 입각할 것을 고집했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1879년 국민자유당이 비스마르크의 보호주의 정책을 거부함으로써 그와 비스마르크의 관계가 냉랭해졌으며, 이때문에 당도 와해되었다. 그해에 우익 보호주의자 집단이 탈당했으며 다음해에는 급진주의자 집단이 떨어져 나갔다. 1888년 황제 빌헬름 2세에게 하노버 주지사로 임명받았고 1897년 공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