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버드

다른 표기 언어 William Byrd
요약 테이블
출생 1543
사망 1623. 7. 4, 에식스 스톤던매시
국적 영국

요약 영국 셰익스피어 시대의 오르간 연주자, 작곡가.

영국의 마드리갈을 발전시켰으며 키보드 음악 양식을 향상시킨 버지널·오르간 음악 작품으로 유명하다.

출생과 초기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토머스 탤리스의 제자였으며, 1563년 2월 27일 링컨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된 것이 최초의 공식적인 직위였다.

1572년 런던에서 왕실예배당 관리인(gentleman)이 되어 탤리스와 함께 오르간 연주자로 있었다. 탤리스와 버드의 개인적·직업적인 친밀한 관계는 음악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그들에게 음악의 수입·인쇄·출판·판매 및 악보인쇄에 대한 독점권을 허용했는데 그해에 그들은 모테트집 〈Cantiones Sacrae〉를 간행하여 여왕에게 헌정했다. 이 책에는 24곡의 모테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16곡은 탤리스가, 18곡은 버드가 작곡했다.

1577년 미들섹스에 있는 할링턴으로 옮겼으며 그후 15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일생 동안 신실한 가톨릭교도였던 그는 런던 밖에서의 은거생활을 더 좋아했던 듯하다. 반역행위에 연루된 몇몇 가톨릭교도들과의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왕실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결코 의심받지 않았다. 1585년 탤리스가 죽고 그 다음해에 부인마저 죽는 일련의 슬픈 사건은 그로 하여금 일에 몰두하도록 했으며 다음 3년 동안 〈시편, 소네트, 슬픔과 경외의 노래 Psalms, Sonets, 이미지 Songs of Sadnes, 이미지 Pietie〉(1588), 〈만물의 노래 Songs of sundrie natures〉(1589), 2권의 〈Cantiones Sacrae〉(1589, 1591)라는 4권의 자신의 음악작품집을 출판했다.

그중 2권의 세속음악작품은 각각 대법관 크리스토퍼 해턴 경과 시종장이자 여왕의 첫째 조카인 헌스던 경에게 헌정되었고, 2권의 모테트곡집은 각각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며 왕에 대한 충성심이 더할 나위 없었던 우스터 백작과 럼리 경이라는 저명한 가톨릭교도들에게 헌정되었다. 또한 1591년 그의 키보드 음악 필사본이 〈나의 네벨 부인 곡집〉(에드워드 네빌 경의 부인인 라헬인 듯함)으로 출판되었으며 그밖의 그의 키보드 음악 작품들은 〈피츠윌리엄 버지널 책 Fitzwilliam Virginal Book〉에 수록되어 있다. 〈피츠윌리엄 버지널 책〉은 또다른 유명한 가톨릭교도인 프랜시스 트래전이 플리트 감옥에 있는 동안 복제했다.

1592년(또는 1593년) 가족과 함께 에식스 스톤던 매시로 이주해서 계속 그곳에서 살았다.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르자 가톨릭교의 전망이 일시적이나마 밝아졌으므로 그는 다음 3권을 출판할 수 있었다. 3권의 미사곡집과 2권의 〈그라두알리아 Gradualia〉(1605, 1607)에서 그는 혼자서 통상미사곡(미사곡 중 변하지 않은 부분)과 주요한 축제의 고유미사곡(교회의 절기나 축제 때마다 바뀌는 미사곡)으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전례곡의 레퍼토리를 모두 소화해내고 있다. 이 2권의 〈그라두알리아〉는 제임스 1세가 즉위한 지 1년 만에 귀족이 된 인물들인 노샘프턴 백작과 그의 또다른 절친한 친구인 리틀 출신 피터 경이라는 2명의 유명한 가톨릭교도들에게 헌정되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또다른 출판물은 영국의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수록한 〈Psalmes, Songs and Sonnets〉(1611)이다.

버드에 대한 평가

버드의 음악사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당시 류트만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악기를 위한 곡을 썼다. 그의 버지널·오르간 작품은 영국의 키보드 음악 양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존 불, 자일스 파너비, 올랜도 기번스, 토머스 톰킨스 같은 다른 영국의 작곡가들의 음악에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비올 콘서트를 위한 작품에서 제임스 1세 시대와 후대의 작곡가들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 된 자유 작곡양식으로 된 판타지아 양식 개발의 선구가 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탈리아 마드리갈을 좋아해서 그것을 영국에 도입하기는 했지만 그의 세속 성악곡은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많은 부분이, 토머스 몰리(그의 제자였음) 등 영국의 후대 마드리갈 작곡가들에 의해 소멸된 방식인, 하성부가 비올 콘서트 반주로 진행되고 상성부가 성부 선율이라는 매우 진부한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때로 이곡들에 마드리갈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다성음악으로 된 기악성부들에 각기 가사를 붙이기도 했다.

신앙심이 돈독한 그는 영어로 된 교회음악을 다수 작곡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대부분이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 곡들도 뛰어나기는 하지만 라틴 종교음악이 그의 작품 중 가장 걸작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 중 1589년과 1591년의 〈Cantiones Sacrae〉(대부분의 작품들이 버드가 몸담고 있던 가톨릭 모임에서의 개인적인 교훈을 위해 쓰여진 것이므로 전례형식에 대한 고려가 없음)는 영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렬성과 대륙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대한 규모의 작품이다.

〈그라두알리아〉는 필요에 따라 좀더 간결하고 외면적으로는 조반니 다 팔레스트리나와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의 작품과 유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이러한 양식에 매우 능통했으며 동시에 대단히 지속적인 호소력을 지닌 진면목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