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버니

다른 표기 언어 Fanny Burney 동의어 Frances d'Arb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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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52. 6. 13, 잉글랜드 노퍽 킹스린
사망 1840. 1. 6,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소설가, 서한문 작가.
본명은 Frances d'Arblay. 결혼 전 성은 Burney.

음악가 찰스 버니의 딸이며, 풍속소설의 발달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에벨리나 Evelina〉를 썼다.

집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독학했으며, 아버지의 친구이며 성공하지 못한 작가로 은퇴한 새뮤얼 크리스프가 문학 수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버니가 쓴 최초의 일기식 편지들은 크리스프에게 쓴 것으로, 유럽의 일류 연주자들이 버니의 런던 저택에서 데이비드 개릭, 존슨 박사, 에드먼드 버크, 리처드 셰리든 등의 모임을 위해 비공식으로 열곤 하던 저녁 음악회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녀는 버니의 영리한 자녀들 가운데 가장 뒤처진다고 여겨졌으나, 눈에 띄지 않게 명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몰래 크리스프에게 털어놓았다.

이처럼 사교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 소설 〈에벨리나 Evelina, or The History of a Young Lady's Entrance Into the World〉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런던의 독특한 말과 방언의 특색을 살리면서 날카로운 사회평론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작품은 사교계에서 자신감을 갖지 못해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판단에서 실수를 거듭하는 한 처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데서 오는 실수들을 극복한 뒤 여주인공 에벨리나가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당대의 풍속을 고상하고 품위있게 다루면서 여주인공의 실수와 불분명한 행동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펼쳐나가는 이 소설은 당시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에벨리나〉는 1778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어 런던을 들끓게 했으나, 아무도 당시 26세에 지나지 않던, 수줍은 성격의 패니 버니가 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비밀이 밝혀지자 패니는 상류사회의 사교모임을 주최하던 스레일 부인의 주선으로 문인들의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일단 수줍음을 이겨내자 존슨 박사와도 재치를 겨룰 정도가 되었다. 1779~83년에 스레일 집안을 방문해 오래 머물렀을 때 존슨은 패니에게 매우 우호적으로 대해주었다.

이 시기부터 쓴 일기문은 당시의 정경과 명사들의 생활상, 또 자신이 유명해진 것에 대해 남몰래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그뒤에 쓴 5권짜리 소설 〈세실리아 Cecilia, or Memoirs of an Heiress〉(전5권, 1782)는 첫 소설에서 보여준 사회적 풍자를 도덕적 교훈과 결합시켜 더 복잡한 줄거리로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에벨리나〉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자연스러움은 부족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기쁨은 잠깐이었고 1781년 헨리 스레일, 1783년 크리스프, 1784년 존슨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무렵 젊은 목사가 그녀에게 애매한 관심을 보이다 그만두어 상심하기도 했다. 1785년 샬럿 왕비와 조지 3세를 알현했고, 이듬해에는 예복 부(副)관리자로서 일해달라는 왕실의 청을 받아 5년 동안 왕궁에 머물렀는데 이때의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건강이 나빠져 1791년 왕의 허락을 받고 일을 그만두었다. 이 시기의 일기에는 왕실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왕이 광기를 보인 1788~89년에 궁정에 나돌던 소문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워런 헤이스팅스의 재판 등 공개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설명이 있다.

41세가 되던 1793년에 알렉상드르 다블레와 결혼했다.

그는 라파예트의 부관참모였으나 당시에는 영국에 사는 무일푼의 프랑스인 망명자였다. 버니는 그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 1796년 돈벌이를 위해 〈카밀라 Camilla:or a Picture of Youth〉를 썼으며 이때 번 돈으로 서리에 집을 짓고 1797년 이사했다. 1802년 남편과 아들을 동반하고 프랑스를 방문하던 중 나폴레옹 전쟁이 다시 일어나자 어쩔 수 없이 10년간 프랑스에 머물렀다. 워털루 전투 뒤 가족과 함께 영국에 돌아와 바스에 정착했으며 남편은 1818년 이곳에서 죽었다.

그뒤 버니는 런던으로 가 아들의 출세를 돕고 아버지의 〈회고록 Memoirs〉(1832)을 출판하는 일에 전력했다. 그녀의 일기와 편지들은 1972~80년에 걸쳐 전8권으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