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근참기

백두산근참기

다른 표기 언어 白頭山覲參記

요약 최남선(崔南善:1890~1957)이 쓴 백두산 기행문.

1926년 박한영(朴漢永)과 함께 조선교육회에서 주최하는 백두산 일대의 박물탐사단에 참가한 후 쓴 것으로, 〈동아일보〉에 1926년 7월 28일부터 1927년 1월 23일까지 총 89회에 걸쳐 연재된 것을 1927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권두에 `백두산근참기 권두'라는 장황한 머리말을 붙이고, '광명은 동방으로서'에서 '그래도 그리운 인간세계'에 이르는 40개의 항목을 탐사 순서에 따라 기술했다.

이 글은 동방문화의 중심이 조선의 단군시대의 무대인 백두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불함문화론의 입장에서, 백두산을 '불함문화의 시원이요 동방원리의 권두언'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 국토와 문화에 대한 찬탄과 긍지를 보여주는 '조선주의'와 연결되었으나, 그 발상은 일본 우파의 민족주의사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어 미나미[南次郞] 총독의 '내선일체' 주장 이후 조선민족과 조선문화의 일본화 주장으로 이어졌다.

〈반순성기 半巡城記〉·〈교남홍조 嶠南鴻爪〉·〈풍악기유 楓岳記遊〉·〈심춘순례 尋春巡禮〉·〈금강예찬 金剛禮讚〉과 더불어 최남선의 중요한 기행문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