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민화

다른 표기 언어 民畵

요약 한 민족의 삶·신앙·멋을 담고 있는 서민적인 그림.

목차

접기
  1. 종류
    1. 민속화로서의 민화
    2. 민간상징화로서의 민화
    3. 민중화로서의 민화
  2. 한국 민화의 특성
민화(民畵)
민화(民畵)

미술을 인식하면서 작품창작을 위주로 하는 정통화의 권위의식이 생겨나기 수천 년 전 그림은 인간의 삶을 위해 인간본연의 소박한 신앙의 조형적 표현으로 만들어졌고, 만인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멋의 대상으로 대접을 받았으며, 그것은 곧 삶·얼·멋 3위일체의 결정체였다.

이러한 복합성을 지닌 그림들을 동·서양에서 모두 넓은 뜻으로 민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국문화사에서 이러한 그림들은 속화라고 불리면서 정통화단의 천대를 받았으나 1965년경부터 민화에 대한 재인식이 싹트고 광범위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시작되어 민화의 문화사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결과 한국민화는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양이 방대하고, 질에 있어서도 기왕의 일반적 민화 수준을 넘어서 기상천외의 독창적인 작품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민화라는 용어는 학문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야생어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민화는 민속화·민족화·민중화·민체화·민간상징화의 성격을 종합한 폭넓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종류

민속화로서의 민화

민간생활 속에서 세시풍속에 따라 달라지는 실용적인 장식화나 기록화들로 가장 많이 그려졌고, 설날이나 명절에 사용되었다.

세시기의 기록을 통해서 설날의 민화를 세화(歲畵)라고 불렀고 수성도·선녀도·신장도·호랑이그림·닭그림 같은 그림들을 사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춘날은 입춘방을 글씨로 써서 붙이는 날이지만 그 글의 내용이 민화그림과 꼭 들어맞는다. 닭이 새해의 덕을 밝히고, 개가 지난해의 재를 쫓는다는 등의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림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화의(畵意)를 입춘방 글씨 때문에 알 수 있다. 4월 8일은 불교적 민속이 행해지는 날인데 그날의 특징적인 행사는 관등행사로서 원래는 정월 대보름 행사였던 것이 고려시대에 4월 8일로 옮겼다는 것을 〈동국세시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수박등·칠성등·일월등·방울등·잉어등·거북등 같은 여러 가지 형태가 적혀 있으나 그 유물자료가 없다. 또 등화그림으로서 호랑이·개·매·늑대·사슴·토끼 등이 나타나 있다.

단오절은 민화의 입장에서 볼 때 부채의 명절로서 단오선이라 해서 부채에 선면화(扇面畵)를 그리는 풍습이 있다. 사대부층에서는 대개 금강산 1만 2,000봉을 그렸고, 서민들은 복사꽃·연꽃·나비·붕어·해오라기 등을 그렸다.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잔치 또한 민화의 명절이 된다. 가장 뜻깊은 잔치는 두말할 것 없이 혼례식이며, 큰 규모의 민화로는 모란병·백자도병·화조병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보다 귀족적인 민화인 요지연도(瑤池宴圖)·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같은 호화로운 병풍도 쓰였다. 돌잔치에는 주로 화조병 같은 것이 쓰였는데 애기병풍이라 하여 작은 병풍체가 특색이다. 일생일대 최고의 잔치는 환갑잔치로 옛날에는 여러 가지 축수도를 선물로 받았는데 송학도·수성도·송록도 같은 장생의 그림들이다. 화제로는 송령학수·군자만년·백령식록 같은 축수의 뜻을 담은 것이다.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장례식에도 그 행사에 알맞은 그림을 사용했는데, 놀랍게도 혼인식에 쓰이는 모란·연꽃 그림이나 용과 봉황의 그림이 장례식에도 사용되었다. 불교 장례식에서는 팔금강·십이지신상·수성도 같은 것을 하늘 높이 띄웠다. 제사 때에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고 불리는 사당도가 흔히 쓰였는데, 사당그림 가운데 위패를 붙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글공부하는 어린이가 책 1권을 마칠 때마다 잔치를 베풀어 주는데 이것은 책거리잔치라고 한다.

호화로운 잔치의 경우는 책거리병풍그림을 마련해준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책거리민화[冊架圖]가 바로 그것이다(책거리그림).

민간상징화로서의 민화

민화 특성의 하나로서 상징성을 들 수 있다.

대개 생활민화에 있어서는 인간의 수복강녕·부귀다자 같은 상징이 가장 중요시되었고, 그 다음에 종교적 상징성을 중심으로 볼 때는 불교·유교·도교·신교의 종교화가 모두 넓은 의미에서 민화에 포함된다. 가장 민화적인 특색을 잘 반영하고 있는 종교화는 무당들이 쓰는 무신도이다. 삼신제석·일월성신·칠성·산신·천신대감·대신할머니 등 무당들이 모시는 수많은 신상탱화의 맥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 유교에서는 인격신을 섬기지 않으므로 종교화에 속하는 신상도가 없다.

다만 인도 중심의 유교철학은 인간의 목숨에 대해 숭고한 해석을 했고, 따라서 오복사상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에 쓰여지는 생활민화상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도교는 많은 신상도를 만들어 냈으나 한국 민간에서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전래된 관왕묘가 몇몇 세워지고 그 속에 옥황상제상·삼존상·관왕·관왕부인·수성노인 등의 탱화가 봉안되었다. 일반민화에서는 수성노인·서왕모·신선도 등의 화제로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불교는 불당에서 불교도들에 의해 모셔지는 수많은 탱화를 조성했다.

그러나 일반생활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생활민화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민중화로서의 민화

민화에는 작가의 낙관이 없는 것이 원칙이며, 이것이 대중참여의 민중화로서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때로는 도화사들이 시범을 했고 불화공들도 자유롭게 참여했다. 이러한 무낙관주의 화풍은 어느 화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민화체 스타일을 창작해냈다.

한국 민화의 특성

한국 민화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채주의·극채주의를 택하고, 운필에 있어서는 속필법을 떠나 완필법을 썼다. 문인화보다는 탱화에 가까운 수법으로 공예적인 화법을 썼다.

둘째, 비사실주의·비합리주의·비정상주의·비권위주의·비가식주의·비야심주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동심의 그림이며, 솔직하고 털털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기상천외의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새로운 그림을 창조했다.

셋째, 매우 해학성이 높다. 바보 같은 호랑이, 할아버지 같은 용, 봉황같이 생긴 수탉 등 만화 같은 느낌을 던져주는 작품이 많다.

넷째, 기법에 있어서도 모필화·혁필화·인두그림·지두화(指頭畵)·실뽑이그림, 연리문그림·절지화(折枝畵)·판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섯째, 표구에 있어서는 병풍이 가장 많이 쓰였고 사용처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족자로도 꾸며졌다.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된 한국민화를 화제별로 정리해 보면 까치·호랑이·십장생·책거리·문자도·용호도·호렵도·화조도·금강산도·어락도 등의 생활민화와 산신도·삼신제석도·칠성도·오방신장도 등의 무당그림이 있는데, 무당그림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결국 지금까지 한국문화의 모든 것이 중국에서 오고 불교에서 왔다고 가볍게 믿었지만 불교·유교·도교 이전의 문화에서 생긴 민간의 지혜와 예술이 우리 문화 속 깊이 살아 있으며, 그것을 솔직하게 잘 입증해준 문화재가 바로 민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