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미식축구

다른 표기 언어 American football , 美式蹴球

요약 미국 고유의 스포츠이다. 경기장은 길이 91m, 폭 48m의 필드 오브 플레이와 양측에 9m씩의 엔드 존으로 이루어진다. 공은 타원형이며 400~425g의 고무공을 사용한다. 선수들은 헬멧, 숄더 패드, 히프 패드, 사이 가드, 니 패드 등의 보호장비를 착용한다.
한 팀의 선수는 11명이며, 공격·수비·킥킹 전담선수들을 각각 11명씩 둔다. 득점이 많은 팀이 승리하며, 터치다운은 상대 팀 엔드 존에 공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상대 팀 엔드 존에서 팀 동료로부터 패스를 받은 경우이다. 경기시간은 60분이며 15분씩 나누어 1·2쿼터는 전반, 3·4쿼터는 후반으로 진행된다.
미식축구는 부상 위험이 높은 경기이므로 부상 방지가 경기규칙 제정에 주요한 내용이다. 현재 독립된 3개의 경기규칙위원회와 규정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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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경기장과 장비
  3. 경기원칙
  4. 득점방식
  5. 전략과 전술
  6. 경기규칙
  7. 심판
  8. 반칙과 벌칙
  9. 역사
    1. 아마추어
    2. 축구와 럭비에 뿌리를 둔 미식축구
    3. 미식축구의 발전
    4. 집단대형
    5. 근대 미식축구의 출현
    6. 대형의 개발
    7. 시즌 후 경기
    8. 프로
    9. 초기
    10. 경기연맹
    11. 프로 경기의 발전
  10. 한국의 미식축구

개요

미국 고유의 스포츠로 야구·농구 등 미국의 다른 스포츠에 비해 세계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적으로 인기있는 경기이다.

대학 스포츠로 시작한 미식축구경기는, 대학 팀은 8월말 가을 시즌을 시작으로 신년연휴까지 미국대학체육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NCAA)의 지역선수권대회와 여러 볼 게임을 치르며 프로 팀은 7월의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이듬해 1월 마지막 주 슈퍼볼을 끝으로 경기를 치른다.

경기장과 장비

미식축구 경기장은 길이 91m, 폭 48m의 경기가 펼쳐지는 필드 오브 플레이와 양측에 9m씩의 엔드 존으로 이루어진다.

골포스트는 양 엔드 라인에 서 있고, 보통 7m(프로 5.6m)의 크로스바는 지상 3m 높이에 있으며, 인바운드인 경기장 양측으로부터 각각 16m(프로 21m) 지점에 4.5m 간격으로 선이 표시되어 있다. 공은 타원형이며 보통 400~425g의 고무공(프로 가죽공)을 사용한다. 헬멧, 숄더 패드, 히프 패드, 사이 가드, 니 패드 등의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경기원칙

득점방식

한 팀의 선수는 11명이며, 1941년까지 모든 선수는 공격·수비·킥킹 등 모든 포지션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1941년 이후 경기 도중 자유로운 선수교체가 허용되어 각 포지션에 전담선수제가 생겼다. 현재 한 팀에는 공격·수비·킥킹 전담선수들을 각각 11명씩 두고 있다.

미식축구는 경기가 종료되었을 때, 득점이 많은 팀이 승리하게 된다. 터치다운은 상대 팀의 엔드 존에 공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상대 팀 엔드 존에서 팀 동료로부터 패스를 받은 경우로 6점을 얻는다. 루스 볼을 상대 팀 엔드존에서 잡은 경우도 터치다운으로 인정된다.

터치다운을 한 팀은 컨버전·트라이 등의 추가득점 기회를 얻는다. 컨버전은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상대 팀 엔드 존 앞 3야드(프로는 2야드) 선에서, 골포스트에 공을 차넘기는 것으로 각각 2점을 얻는다. 이밖에도 필드 골은 3점이며, 세이프티는 수비 팀에 의해 공이 수비 팀 엔드 존에 들어가고 그 공을 다시 수비 팀이 확보한 경우로 공격 팀이 2점을 얻는다.

경기시간은 60분으로 15분씩 나누어 진행된다. 1, 2쿼터는 전반, 3, 4쿼터는 후반으로, 전반이 끝나면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20분(프로는 15분)의 휴식시간을 갖는다.

전후반은 각각 35야드 라인에서 수비 팀의 킥오프로 시작된다. 킥오프 이후 양 팀은 다양한 공격·수비 대형으로 스크리미지를 짜며, 공격 팀은 스크리미지 선에 최소한 7명의 선수가 배치되어야 한다.

공격 팀에게는 4차례의 스크리미지 다운 기회가 주어지며 4차례 내에 10야드 이상을 전진하면 다시 4회의 기회가 주어진다. 만약 공격 팀이 10야드 전진에 실패하면 공격권을 빼앗기게 된다. 각각의 다운에서 공격 팀의 센터는 다리 사이로 쿼터백에게 공을 넘겨주고, 쿼터백은 공을 전진 패스 등을 통해 전진시키거나 차내게 된다. 수비 팀은 태클 등 정당한 방법을 통해 공격 팀의 전진을 저지한다.

각 다운은 공을 가진 선수가 저지되었을 때, 전진 패스에 실패했을 때, 볼이 펌프되었을 때, 수비 팀이 공을 확보했을 때, 공격 팀이 득점을 했을 때 종료된다.

공격 팀이 득점한 경우에 킥오프로 경기가 계속되며, 다시 스크리미지, 득점, 공격권 이양 등의 형태가 경기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반복된다.

전략과 전술

스크럼이 스크리미지로 바뀌었던 1880년에는 7명의 포워드 진 뒤에 4명의 백이 뒤집힌 T자형으로 포진하는 공격대형이 사용되었다.

노터 데임 박스 대형은 4명의 백이 4각형으로 서는 대형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주로 사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워너의 싱글 윙 대형과 더블 윙 대형이 중요한 공격형태였다.

이 대형들에서는 1, 2명의 하프백이 포워드 엔드 뒤쪽에 서며 더블 윙 대형의 경우 풀백이 경기의 중심역할을 담당한다. 1900년경 올리스터가 고안한 I대형은 T대형의 변형으로 풀백은 엔드 뒤쪽에 서고, 3명의 백이 센터 뒤에 일렬로 정렬한다.

파워 스윕, 오프 태클 등의 전략은 I대형으로부터 개발되었다. 1970년대에는 현재도 많이 사용되는 위시본 대형과 비어 대형이 개발되었다. 위시본은 4명의 백이 뒤집힌 Y자형으로 센터 뒤에 정렬하는 대형이며, 비어 대형은 위시본에서 풀백이 엔드 뒤쪽에 서는 대형으로, 이들 대형에서는 여러 형태의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숏건 대형은 숏펀트 대형의 변형으로 원거리 패스를 시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 대형은 패서를 상대 팀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용이하다.

수비의 목적은 상대 팀의 전진과 득점을 저지하고, 공격권을 빼앗는 데 있다. 수비대형은 상대 팀의 공격대형과 다운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격 팀과는 달리 스크리미지 선에 7명 이상의 선수가 서지 않아도 된다. 미식축구사에는 12개의 기본대형이 있다. 전진 패스가 금지되었던 1906년 이전에는 7-3-1 대형이 일반적이었고, 그후 1930년경까지는 7-1-2-1 대형, 7-2-2 대형이 주요수비형태였다.

1930년대에 고안된 6-2-2-1 대형은 1980년대까지도 많이 사용되었다. 수비대형은 공격대형의 변화에 따라 스크리미지 선에 6, 7명이 서는 형태에서 4, 5명의 형태로 변했고, 현재는 전진 패스에 대비하는 3-4 대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규칙

미식축구는 부상 위험이 높은 경기이다.

그래서 부상 방지가 경기규칙 제정에 주요한 내용이 되어왔다. 1876년 미국의 8개 대학교의 대표들에 의해 최초의 경기규칙이 제정되었고, 그후 1930년까지 모든 미식축구 경기는 NCAA의 규칙에 의해 행해졌다. 1932년에 전미 고교 풋볼 연맹(NFSHSA)이 독자적으로 경기규칙을 제정했고, 1933~34년 NFL도 NCAA 규정을 바탕으로 규칙을 제정했다. 그래서 현재 미식축구에는 독립된 3개의 경기규칙위원회와 규정이 있다.

심판

미식축구 경기는 프로 경기의 경우 7명, 대학 경기의 경우 4명에서 7명, 고교 경기는 3명의 심판진에 의해 진행된다.

레프리는 득점의 인정, 벌칙부과 등 경기전반에 걸쳐 통제와 판정을 한다. 엄파이어는 선수가 착용한 장비의 적합성, 스크리미지 선상에서의 행위 등에 관여한다. 라인 맨은 스크리미지 대형의 반칙행위, 공의 전진거리 등을 판정하며, 백저지는 수비선수의 수, 리시버, 패스 등의 적절함을 판정한다.

그외 라인저지는 라인 맨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필드저지와 사이드저지는 백저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파울은 레프리에게 보고되며, 레프리가 벌칙을 부과한다.

반칙과 벌칙

일반적으로 미식축구 경기 도중에 발생하는 반칙으로는 일리걸 프로시저, 부정출발, 공격적 홀딩, 오프 사이드, 경기지연 등이 있다.

이중 프로시저 반칙이 모든 반칙의 65%를 차지한다. 공격적 홀딩, 수비 패스 방해 등의 반칙은 판정에 어려움이 있어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칙이 발생한 경우에는 야드 페널티, 다운의 상실, 공격권 이양, 실격 등의 벌칙이 부과된다. 벌칙부과 시점은 파울이 발생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미식축구경기장
미식축구경기장

역사

아마추어

초기 형태의 풋볼이 미국에 알려진 것은 17세기초 영국 식민지시대부터였으나 미식축구가 대학 스포츠로 정착되는 데는 200년 이상이 걸렸다.

1820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볼오운'이라는 경기를 했고, 다른 대학들에서 볼오운의 형태를 발전시켜갔으나 정해진 경기규칙은 없었다. 1850년대는 원형의 고무공이 도입되면서 경기기술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으나 당시 경기는 오히려 근대 축구에 가까웠다.

축구럭비에 뿌리를 둔 미식축구

1867년에는 축구식의 풋볼에 대한 소위 프린스턴 규칙이 제정되었다.

이 규칙은 런던 풋볼 협회의 규정을 수정한 것으로 각 팀의 선수를 최고 25명으로 제한했다. 같은 해 러트거스뉴저지주립대학교에서도 경기규칙을 만들었고, 1869년 프린스턴대학교와 러트거스뉴저지주립대학교가 뉴브런즈윅에서 미국 최초의 대학간 풋볼 경기를 벌였다. 1873년에는 프린스턴대학교·예일대학교·컬럼비아대학교·러트거스뉴저지주립대학교가 함께 런던 풋볼 협회의 규정을 바탕으로 최초의 대학 풋볼 경기규칙을 제정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경기는 축구에 가까웠다. 1874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축구식 풋볼을 하던 하버드대학교 팀과 럭비식 풋볼을 하던 맥길대학교 팀 간의 2차례에 걸친 풋볼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로 축구와 럭비의 규칙이 혼합된 '양여규칙'이 제정되어 미식축구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876년에는 프린스턴·하버드·예일·컬럼비아 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 풋볼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계란형의 가죽공을 사용하고 골 득실이 아닌 터치다운의 수로 승부를 가리는 등 영국 럭비 풋볼 협회의 규정을 채택했고, 그결과 럭비가 미국 대학 풋볼 경기가 되었다.

미식축구의 발전

'미식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터 캠프는 풋볼 경기에 혁신적인 방안들을 도입함으로써 미식축구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했다.

1880년 캠프는 럭비식의 스크럼을 정렬된 상태의 스크리미지로 바꾸었고, 쿼터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각 팀의 인원을 현재와 같은 11명으로 줄이면서 포워드 7명, 쿼터백 1명, 하프백 2명, 풀백 1명으로 배열했다. 1882년 캠프는 3차례의 다운에 5야드 이상을 전진하지 못하면 공격권을 상대 팀에 넘겨주는 다운야드 체제를 도입했다(다운, 야드). 미식축구 규정의 핵심인 이 규칙은 1906년 10야드로, 1912년 4차례의 다운으로 각각 개정되었다.

이듬해 캠프는 필드 골 5점, 터치다운 2점, 컨버전 4점, 세이프티 1점 등의 득점방식을 소개했다. 이후 득점방식은 킥킹의 비중을 낮추어 1912년에는 세이프티 2점, 필드 골 3점, 터치다운 6점, 컨버전 1점으로 바뀌었다.

1888년에는 허리 위쪽만 허용되었던 태클이 양팔을 벌리지 못하고 무릎 이하로만 태클이 허용되도록 경기형태가 바뀌었다. 그결과 선수들이 일렬로 붙어서는 대형(隊形)이 나타났다. 이 대형은 미식축구의 기본대형인 T대형의 기초가 되었다.

집단대형

1890년 A. A. 스태그는 '엔드 백' 대형을 도입했다.

포드진 양끝의 엔드를 뒤편의 백과 함께 세우고, 공을 가진 선수가 전진할 때 상대선수를 저지하도록 한 이 대형의 도입으로 경기는 더욱 거칠어졌다. 1891년 스태그는 상대 팀의 태클에 대비해 타원형의 대형을 구축하는 '터틀 백' 대형을 선보였고, 하버드대학교 팀이 이를 사용했다. 1892년에 하버드대학교 팀은 '플라잉 웨지' 대형을 개발했다.

이것은 킥오프 때 킥커가 공을 멀리 차지 않고 살짝 움직여서 자신이 그 공을 잡고, 동료들이 V자형으로 그를 감싸는 형으로 경기는 더욱 위험해졌다. 그러나 1893년 이 대형이 일반화되었고, 이로 인해 풋볼은 폭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1894년 뉴욕의 대학 체육 클럽은 새로운 경기규칙위원회를 구성해 V대형과 플라잉 웨지 대형을 금지시켰다.

스태그의 '태클 백', G. 우드러프의 '가드 백' 대형의 도입, 하버드의 플라잉 웨지 대형 등 위험한 대형의 경기는 계속되었다. 1895년 중서부지역 대학들은 동부지역에서 독립해 서부지역경기연맹을 구성했고, 1896년 동부지역 대학들과 함께 경기규칙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위원회에는 위험한 대형을 금지시켰고, 1910년에는 스크리미지에 7명의 포워드를 모두 서도록 했다.

근대 미식축구의 출현

1905년은 가장 험악한 시즌중 하나였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대학시즌 중 18명이 사망하고, 159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고, 이에 따라 루스벨트 대통령은 경기규칙의 개정을 요구했다. 1905년말 60여 개 대학을 중심으로 NCAA의 전신인 미국대학간체육협회가 설립되었고, 1906년 이 협회의 풋볼 규정위원회와 월터 캠프가 회장이었던 아메리칸 풋볼 규정위원회가 회동해 경기규칙을 개정했다(미국대학체육협회). 주요개정에는 전진 패스의 인정과 경기시간을 70분에서 60분으로 줄이고 전후반 30분으로 나누었으며, 뉴트럴 존을 만들었고, 3번의 다운에 10야드를 전진해야 하도록 한 것 등이 포함되었다.

1910년에는 경기를 위험하게 만드는 대형을 종식시키기 위해 공격진의 포워드 선에 7명의 포워드가 모두 서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은 많은 경기를 무승부로 이끄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1912년 위원회에서 다운을 4회로 늘리고, 경기장을 100야드로 줄였으며, 엔드 존은 각각 10야드로 늘려 터치다운이 쉽게 되었다.

대형의 개발

미식축구는 새로운 대형들이 개발되면서 점차 복잡해졌다.

1913년 무명의 노터데임대학교 팀이 최강의 육군 팀을 대파하게 했던 전진 패스 시스템은 코넬·스탠퍼드 등 여러 대학교에서 44년간 코치 활동을 한 워너에 의해 윙 백 대형이 고안되면서 전파되었다. 그외에도 1960년대까지 스플릿 T대형, 윙 T대형, I대형 등 여러 대형이 개발되었다.

시즌 후 경기

시즌 후 경기인 '볼' 경기는 1902년 1월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서 로즈볼이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우수 대학 팀간에 벌어지는 '볼' 경기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1930년대 중반 이후 오렌지 볼, 슈거 볼, 코튼 볼, 선 볼 등 많은 시즌 후 경기가 열리고 있다.

프로
초기

미국 최초의 공식적인 프로 경기는 1895년 8월 31일 펜실베이니아 주 러트로비에서 개최되었으며 그후 많은 프로 팀이 탄생했다.

현대적 메이저리그 경기는 1918년 G. 핼러스와 R. 주프커에 의해 시작되었다.

경기연맹

1920년 9월 17일 미국 프로 풋볼 협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미국 프로 풋볼 협회는 시즌경기를 개최하지 못했고, 해체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1921년 4월 프로모터 출신인 J. 카르가 신임회장이 되면서 소속팀들의 경기일정을 조정했다. 1922년 미국 프로 풋볼 협회는 내셔널 풋볼 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NFL)로 명칭을 바꾸었고, 카르가 재임중이던 1925년 프로 미식축구가 번영의 원년을 맞게 되었다. 당시 스포츠 영웅이었던 R. 그레인지는 시카고 베어스 팀에서 미대륙횡단순회경기를 통해 프로 미식축구의 대중적 인기를 유도했다.

1946년에는 NFL의 상당한 반대 속에서 8개 팀으로 구성된 전미 풋볼 경기연맹(All American Football Conference/AAFC)이 설립되었으나 1950년 이후 NFL에 흡수되었고, 곧이어 NFL은 12개 팀으로 재조직되었다. 1950년 NFL은 경기 도중 선수를 무제한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로 선수와 코치들의 역할이 전문화되었고, 경기는 한층 흥미롭게 되었다.

1959년에는 아메리칸 풋볼 리그(American Football League/AFL)가 댈러스 팀과 로스앤젤레스 팀을 비롯한 9개 팀을 회원으로 해 설립되었다. 1966년 NFL과 AFL은 합병을 발표했고, 1970년 1월 26개 팀으로 각각 동부·중부·서부의 3개 지역 리그를 포함한 양대 리그로 구성된 새로운 NFL 체제가 출범했다.

프로 경기의 발전

최초의 슈퍼 볼 경기는 1967년 1월 로스앤젤레스 원형경기장에서 NFL 우승 팀인 그린베이 패커스 팀과 AFL 우승 팀 캔자스시티 치프 팀 간의 경기로 시작되었다.

그후 슈퍼 볼 경기는 단 하루 동안 펼쳐지는 미국에서 가장 성대한 경기가 되었다. NFL과 AFL 두 리그가 합병된 1970년을 시발점으로 미식축구에는 플레이 오프 체제가 도입되어 8개 팀이 슈퍼 볼과 NFL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1978년 이후 10개 팀이 플레이 오프 전에 참가하고 있다. 1960년대에 많은 수비전략이 개발되어 1970년대에 이르러 공격적인 요소가 증가되도록 경기규칙이 개정되었다. 1980년대에는 수비대형이 개발되었고, 전문수비수도 양성되었다.

한국의 미식축구

1946년 9월 5일 김영달·장박·전득수 등이 YMCA에서 조선미식축구협회를 창립하면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미군정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한미친선경기가 이루어졌고, 1948년에는 보인상업고등학교에 미식축구부가 창설되어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한동안 침체기에 있다가 1960년대에 들어 각 대학에서 팀을 창단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 팀을 구성하고 있는 대학으로는 고려대학교·서울대학교·동아대학교·동의대학교·부산대학교·경성대학교·서울시립대학교·성균관대학교·연세대학교·경북대학교·계명대학교·금오공과대학교·영남대학교·한양대학교·한국해양대학교·해군사관학교 등 16개 팀이 있다. 전국 규모의 전국대학미식축구선수권대회는 춘계와 추계는 서울에서, 동계는 부산에서 각각 개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