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미드

다른 표기 언어 George G(ordon) Me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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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5. 12. 31, 스페인 카디스
사망 1872. 11. 6, 미국 필라델피아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장교.

미드(George G(ordon) Meade)
미드(George G(ordon) Meade)

미국 남북전쟁 때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진 전투(1863. 7)에 참가해 북군이 승리를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부의 제3군사지구의 사령관으로 있으면서 공명정대하기로 정평이 있었고 그의 이러한 성품은 전후 재건시대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스페인 주재 미국 해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35년 뉴욕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포병부대에 들어갔으나 그곳에서 1년 정도 복무하다가 그만두고 측량사로 일했다. 1842년 다시 군대에 들어갔으며 1861년 8월 펜실베이니아 제2예비여단 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북군이 버지니아의 프레더릭스버그에서 참패한 뒤 제5군단에 배속되었으며 버지니아의 챈설러즈빌 전투에 참여했다(1863. 4~5). 1863년 6월 28일 링컨 대통령은 조지프 후커 장군을 해임시키고 미드를 포토맥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뛰어난 전술로 게티즈버그에서 로버트 E. 리 장군을 격퇴시켰다(7. 1~3).

그러나 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리 장군의 군대를 도망가도록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토맥군 사령관을 맡고 있었으나 1864년 3월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로 그의 작전권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는 동료들과 자주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864년 8월 정규군의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 요직을 거쳤다(→ 게티즈버그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