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

발라

다른 표기 언어 (Marie-Esprit-)Léon Wal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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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34. 12. 16, 프랑스 에브뢰
사망 1910. 1. 5, 스위스 몽트뢰 근처 클라랑
국적 프랑스·스위스

요약 프랑스 태생의 경제학자.

그의 탁월한 저작 〈순수 경제학 요론 Éléments d'économie politique pure〉(1874~77)은 경제의 일반균형에 대해 수학적 분석을 시도한 최초의 포괄적인 이론으로 꼽힌다.

발라는 수학 성적이 부진해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입학시험에 2차례나 탈락하고 1854년 광산학교에 입학했다. 1년 뒤 다시 학교를 그만두고 문학을 하려 했으나 그것도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1858년 경제학자인 아버지 오귀스트 발라는 그에게 경제학 연구에 평생을 바치도록 설득했으나, 필요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발라는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또 한때 기자가 되어 저널리즘에 종사하기도 했고 몇몇 회사에 다니기도 했으나,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발라는 레옹 세이와 함께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것처럼 협동조합이 서유럽 혁명활동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1865년 생산자협동조합을 위한 은행을 세워 발라가 관리이사직을 맡았으며, 또 1866년부터는 협동조합에 관한 월간지 〈일 Le travail〉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868년 은행 운영과 잡지 발행 모두 실패했다.

발라는 1870년 스위스 로잔아카데미의 정치경제학교수로 임명되어, 1892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그는 새로운 경제학파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것으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이 학파는 뒷날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에 의해 계승·발전되어 로잔 학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발라는 고전 역학에서 자주 사용된 연립방정식의 해법을 경제학에 적용했다. 그의 연구는 '완전경쟁'의 가정하에 생산요소·생산물·가격 등이 자동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되는 수학적 모형을 완성함으로써 생산·교환·화폐·자본의 이론들을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또한 자유기업체제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개혁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겨, 토지국유화와 금본위제의 수정 등을 중심으로 한 제반조치를 시행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