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에라 형제

반디에라 형제

다른 표기 언어 Attilio and Emilio Bandiera

요약 이탈리아의 독립운동가 형제.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 지배에 항거해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이탈리아 혁명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주세페 마치니의 추종자였다.

아틸리오와 에밀리오는 오스트리아 해군제독이던 프란체스코 반디에라 남작의 아들로, 해군 장교가 되었으나 마치니 및 그의 조직 '청년 이탈리아당'(Giovine Italia) 성원들과 편지를 나누면서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대의에 빠져들었다. 1841년 아버지가 지휘하는 시리아와의 전쟁에 참가하던 중 이탈리아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인 '에스페리아'(Esperia)를 만들었다. 1843년 동료 장교들과 수병들을 선동해 몰타에 근거를 둔 혁명단체인 레조네 이탈리아나(Legione Italiana)에 가담하도록 했으며 군함을 훔쳐 메시나를 포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에스페리아의 한 회원이 이 계획을 누설해 반디에라 형제는 1844년 그리스 해안의 외딴 섬인 코르푸로 도망쳤다. 나폴리 왕국의 민중들이 봉기를 이끌 지도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반디에라 형제는 20명의 젊은이를 모아 1844년 6월 12일 이탈리아 반도의 앞부리라 할 수 있는 칼라브리아로 항해했다. 4일 뒤 코트로네에 상륙한 이들은 코센차 근처로 행진해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독립을 선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이 기대했던 지원은 없었으며 결국 코르시카 출신의 조직원 피에트로 보케치암페에게 배신당했다. 1844년 7월 23일 이들 형제와 9명의 동료들이 처형되었는데 이들은 쓰러지는 순간 "이탈리아 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사형은 멀리는 영국에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치니는 반디에라 형제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영국 국무장관 제임스 그레이엄 경(卿)의 명령에 따라 치밀한 검열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영국 외무부가 그들의 계획을 오스트리아에 알렸다고 비난했다. 이 비난은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졌으나 마치니는 '제임스 그레이엄 경에 보내는 편지'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유창하게 그의 투쟁 대의를 주장하는 기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