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바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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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테이블
위치 독일 튀링겐 주 중부
인구 65,855명 (2022년 추계)
면적 84.48㎢
언어 독일어
대륙 유럽
국가 독일
특징 유네스코 세계유산 (1998년)

요약 독일의 행정구역. 에르푸르트 시 바로 동쪽에 일름 강을 끼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산업은 콤바인 제조업이다. 1815~1918년에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의 수도였고 1918~19년의 혁명 후 성립된 독일 국회가 이 시에서 열렸으며, 신공화국의 헌법이 제정됙 곳이다. 1920~48년에는 튀링겐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었으나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구되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 초 독일 학문 중심지여서 중요한 건물들의 대부분은 괴테와 실러 등 유명인사들과 관련되어 있다. 부헨발트 국립기념관은 나치 강제수용소 중 하나가 있던 곳으로 5만 6,000명가량의 유대인이 사망했고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바이마르(Weimar)
바이마르(Weimar)

에르푸르트 시 바로 동쪽에 일름 강을 끼고 있다. 975년 비마레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에 언급된 이곳은 1254년 시로 선포되었으며, 1348년 자치시로 인가 받았다. 1247~1372년에 바이마르오를라뮌데 백작들의 지배를 받은 뒤 색슨족의 베틴가(家)로 넘어갔고 1547년에는 작센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1815~1918년에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독일공화국의 헌법개정 국민대표기구로 1918~19년의 혁명 후 성립된 독일 국회가 1919년 2월 6일부터 이 시에서 열렸으며, 이곳에서 신공화국의 헌법이 제정되었다. 1920~48년에는 튀링겐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었으나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구되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 독일의 학문 중심지였다. 중요한 건물들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생을 마친 괴테와 실러, 그밖에 이곳의 화려한 대저택에 매료된 몇몇 유명인사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 시대를 상기시켜주는 것으로는 독일국립극장 앞에 있는 괴테와 실러에게 바쳐진 청동기념비(1875), 괴테·실러 능묘, 괴테·실러 고문서보관소(1896 개관), 괴테가 살던 집인 괴테 국립박물관, 괴테의 여름 전원주택, 실러와 프란츠 리스트의 생가, 리스트 박물관, 프란츠 리스트음악대학, 프리드리히 니체 고문서보관소 등이 있다.

그밖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된 많은 유적지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에는 비툼스 궁(1767), 바이마르 성(1790~1803), 벨베데레 성(1724~32), 티에푸르트 성, 루카스 크라나흐와 그의 아들이 제단 뒤의 벽장식을 그린 장크트페터운트파울 교회 등이 포함된다.

1919~25년에 바우하우스 건축학교가 있었으나 그뒤 데사우로 옮겨갔다. 1953년 정부에서는 독일문학 고전작가 기념 센터와 국립연구소를 설립하고 이곳에 본부를 두었다. 또한 이 시에는 독일 셰익스피어 학회 본부, 농업전문대학, 농과대학교, 국립관측소 등이 있다.

북서쪽으로 478m 높이의 에테르스부르크 언덕에는 부헨발트 국립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은 가장 규모가 크고 악명 높았던 나치 강제수용소(1937 설립) 중의 하나가 있던 곳으로 이 수용소에서 5만 6,000명가량의 유대인이 사망했다. 원래는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곳이었던 부헨발트 수용소는 특히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1945년 4월 연합군이 점거한 대규모 집단수용소 중 최초의 것이었다.
철도교차지인 이곳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콤바인 제조업이다.

지도
바이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