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파

바리사이파

다른 표기 언어 Pharisee

요약 BC 165~160년경 등장한 바리사이파는 대제사장 집단인 사두가이파와 달리 평신도와 서기관들의 집단이었다. 사두가이파는 글로 쓴 토라만이 계시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가르친 반면, 바리사이파는 율법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토라를 해석하고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율법을 그 안에 담긴 정신에 따라 해석했다. BC 100년경 바리사이파는 유대교를 민주화하고 이를 제사장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오랜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을 떠나서도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리사이파는 변화하는 역사의 상황 속에서 유대인의 성서해석에 융통성을 부여함으로써 유대교를 보존하고 전수했다. 교육에 기울인 노력도 유대인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전전승(기록되지 않은 토라)의 구속력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아직까지 유대교 신학사상의 기본 신조로 남아 있다.

200년경 미슈나(탈무드의 첫 부분)를 편집할 때 유대법에 관한 바리사이파의 가르침을 포함시켰다(구전율법). 바리사이파(히브리어로 'Perushim')는 마카베오 반란 직후인 BC 165~160년경 뚜렷한 한 집단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체로 하시드파의 영적인 후손들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 유대 민족지도자들을 독점 배출해온 대제사장 집단인 사두가이파와 달리 평신도와 서기관들의 집단으로 등장했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이에 분열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토라(〈구약성서〉의 첫 5권)에 대한 태도가 각기 달랐고, 모세 시대와는 전혀 다른 당시 상황에서 일어나는 법적·종교적 문제에 대한 답변과 결정의 기초를 토라 안에서 찾는 방식 또한 각기 달랐다는 데 있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사두가이파는 토라, 즉 성문율법에 직접 기초를 두지 않은 가르침은 구속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반면, 바리사이파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은 성문법과 구전법, 즉 선지자들의 가르침(성문)과 유대 민족의 구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제사장 출신의 사두가이파는 글로 씌어진 토라만이 계시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가르친 반면, 바리사이파는 율법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토라를 해석하고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과 양심에 모순되면서까지 율법의 문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바리사이파는 토라의 가르침을 그들 자신의 사상과 조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의 사상이 그 토라 속에 암시 내지는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그 안에 담긴 정신에 따라 해석했다. 환경이 변해 법이 맞지 않게 되거나 소용이 없어지면 그 법에 알맞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성서해석학의 세분된 체계를 통해 그것을 정당화해줄 성서적 근거를 찾았다. 바리사이파의 토라 해석이 계속 발전하고 유대교 내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은 그들의 이같은 진보적 성향 때문이었다(하시드파).

바리사이파는 원래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주로 학자와 경건한 신자가 모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대중적 지지를 크게 받았고, 〈신약성서〉에서 많은 대중의 대변자로 등장한다. BC 100년경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유대교를 민주화하고 이를 성전 제사장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오랜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을 떠나서도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예배란 피의 제사(성전 제사장들이 하는 제사)가 아니라 기도와 하느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배장소로 성전 이외의, 성전과 분리된 회당을 많이 발달시켰다.

이렇게 회당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발달시켰고, 중요하게 만들었으며, 유대인의 종교적 삶의 중심이 되게 했기 때문에 바리사이파적 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통 유대교의 발전상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이었던 바리사이파의 활동시기는 AD 2, 3세기까지 이어졌다. 바리사이파는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유대인의 성서해석에 융통성을 부여함으로써 유대교를 보존하고 전수했다. 교육에 기울인 노력도 그후 유대인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AD 70년 제2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디아스포라의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를 존속시키고 발전시켜온 것은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회당과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