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몰타

다른 표기 언어 Malta
요약 테이블
위치 남지중해
인구 536,740명 (2024년 추계)
수도 발레타
면적 316.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몰타 공화국 (The Republic of Malta)
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몰타인
언어 몰타어,영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로마가톨릭(98%)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수레국화
대륙 유럽
국가번호 356
GDP USD 14,873,000,000
인구밀도 1,678명/㎢
전압 240V/50Hz
도메인 .mt

요약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작은 군도. 수도는 발레타이며, 화폐는 유로이다. 국민 대부분은 몰타인으로 언어는 몰타어,영어가 주로 쓰이며, 종교로 로마가톨릭을 믿으며 기후는 지중해성기후이다. 대체로 관광업·경공업·해운업·농업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체제로 1인당 국민총생산은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몰타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
몰타 국기
몰타 국기

몰타는 사람이 살고 있는 3개의 몰타·고초·코미노 섬과 4개의 작은 무인도로 이루어진 국가로서 시칠리아 남쪽으로 9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해서 지중해 지배권을 둘러싼 투쟁이 계속되었으며 북아프리카·중동의 고대문화와 부상하는 유럽 간의 상호작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수도는 발레타이다.

지도
몰타

자연환경

몰타의 자연환경
몰타의 자연환경

몰타 공화국 전체 면적 가운데 78%를 차지하는 몰타 섬의 핵심부는 서쪽에서 높이 185~245m에 달하는 높은 산호질 석회암 고원인데, 그 주위를 둘러싼 검푸른 점토질의 경사지는 남쪽으로 높이 125m인 글로비게리나(해양 원생동물) 석회암 지역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같은 지질학적인 조건들은 물이 여과되어 지하수로 저장되기에 유리하다. 몰타 섬과 사람이 거주하는 다른 섬들의 해안선은 항구, 만, 백사장, 암석투성이의 작은 만 등으로 들쭉날쭉하다. 또, 이들 섬에는 영구적인 강이나 호수가 없다.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으로 무덥고 건조한 여름과 서늘하고 비가 많은 겨울, 그리고 서리·눈·안개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연평균강우량은 약 500㎜이다. 기온이 높고 일정한 강이 없기 때문에 토양 형성이 느리며, 따라서 자연적인 식생이 드물다. 담수 부족을 다소나마 해결하기 위해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하는 공장이 건설되었다.

국민

몰타를 구성하는 주민은 이탈리아·아랍·영국·페니키아계 혼혈이 많다. 대부분의 주민이 현지 태생이며 로마 가톨릭교도가 96%로 압도적이다. 나머지 소수 종교로는 이슬람교, 무신론자도 소수 존재한다. 공용어는 영어와 모국어인 몰타어이다. 제3언어로 이탈리아어도 쓰인다.

몰타의 인구는 2024년 기준 53만 6,740명이다. 인구밀도는 1,678명/㎢으로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의 96%가 도시에 집중 되어 있으며, 15세 이하가 전체인구의 14%를 차지한다. 인구성장률은 연 2%대를 유지하며 높은 편이지만 전체적인 자연증가율이 비교적 낮아 전형적인 선진국 수준을 밑돌고 있다.

경제

Malta International Airport
Malta International Airport

대체로 관광업·경공업·해운업·농업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체제이다. 마르삭스록 만에 새로 생긴 항구는 특히 지중해의 주요 적환지(積換地) 기능을 하여 몰타의 무역을 크게 신장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인구 증가율보다 더 빠른 비율로 증가하고 있는 1인당 국민총생산은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전국토 면적의 약 44%가 경작 가능한 땅으로 채소·곡물·감자·감귤류를 포함한 경작물 대부분이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지대에서 재배된다. 몰타는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농업생산이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4%에 불과하다. 광물자원은 빈약하며 광업은 주로 글로비게리나 석회암 같은 건축용 자재 생산에 한정되어 있다. 제조업은 GNP의 1/4 정도를 차지하며 섬유·의류·신발·전기기구·플라스틱 등을 수출한다. 정부는 몰타개발공사를 통하여 공업발달을 도모하고 있다. 관광업은 몰타의 주요산업이자 외화 수입원인데 관광객 대부분이 영국에서 온다.

1979년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정부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고 재정적자가 초래되었다. 현재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정부 재정은 국민보험·소득세·관세·소비세가 최대 수입원이고 지출은 주로 국민보험수당·의료·교육에 할당된다. 국가의 기본설비는 매우 잘 갖춰져 있어서 거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드라이독이 1973년에 국영화되었고 선박 건조·수리가 중요한 산업이다.

몰타의 주요항구와 국제공항은 루카에 있다. 국제수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및 중반에 적자를 기록했다. 1980년대초에 섬유산업이 유럽공동체(EC)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불리한 영향을 받았다. 최대 무역상대국은 독일·영국·이탈리아이다.

Portomaso Business Tower
Portomaso Business Tower

정치와 사회

1974년에 기존의 1964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몰타는 영연방의 구성국이 되었다.

단원제 의회가 입법권을 행사하고, 헌법상의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5년 임기로 의회에 의해 선출된다. 또한 대통령은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당의 총수를 총리로 임명한다. 주요정당들로 사회민주주의 계열인 몰타 노동당과 기독교민주주의 계열인 국민당이 있다.

1854~73년에 성문화된 몰타 법은 대체로 나폴레옹 법전과 나폴레옹 1세 시대의 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몰타 주민은 높은 생활수준을 누린다. 일련의 사회보장법에 따라 질병·상해·실직·취업불능에 대해 보상금이 나오고 가족·자녀 수당, 노후·장애자 연금 등이 보장된다. 공공 의료기관에서 다루는 입원과 특정한 개인 공공의료는 무료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 심각한 문제였던 주택부족현상은 전에 영국군과 그 가족들이 쓰던 주거·사무실 지역을 전환하여 이용함으로써 상당히 줄어들었다. 교육은 6세부터 16세까지 의무교육이며 공립학교에서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 옛날의 구(舊)대학교와 신(新)대학교가 1980년에 몰타대학교로 통합되었다. 인구가 적은데도 영어와 몰타어로 된 출판활동이 매우 활발하며 정기간행물이 특히 많은데 그중 정치적 성향을 띤 것이 많다. 영어와 몰타어로 다중 방송되는 텔레비전은 프로그램 대부분이 지역적으로 편성된다.

The Courts of Justice building
The Courts of Justice building

문화

민속전통은 주로 축제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으며 이 축제의 특징은 마을 수호신을 기리는 불꽃놀이와 행렬이다. 몰타에는 독특한 신석기시대 유적 외에도 17∼18세기에 꽃피웠던 건축유파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들이 있다. 이탈리아 화가들인 카라바조와 마티아 프레티가 이곳에서 수년을 보냈으며 마티아 프레티가 그린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많은 교회를 장식하고 있다. 몰타 문학은 민족시인이었던 둔 카름의 시들로 해서 가치가 높아졌다.

Manoel theatre
Manoel theatre

역사

몰타에 남아 있는 가장 초기의 고고학적 유적은 그 기원이 BC 38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페니키아인(人) 취락의 증거로 여겨졌던 거석 유적들은 현대 고고학계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밝혀져서 사실상 지중해지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BC 8세기 또는 7세기초에 카르타고인이 이 섬에 상륙한 증거가 있으며, 이들은 섬 주민을 가혹하게 지배하면서 많은 공물을 징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BC 218년에 로마 지배 밑으로 들어간 뒤 자치도시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AD 60년에 사도 바울로가 난파당했던 만(灣)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섬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395년 로마 제국이 분열하면서 동로마 제국에 할당되었으며, 그후 870년 아랍인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1091년 당시 시칠리아 백작이었던 노르만 귀족 루제로 1세가 소규모의 일행과 함께 몰타에 상륙하여 아랍인들을 물리쳤다. 이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권이 재수립되고 주교들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점차 강화되는 봉건적인 관례로 몰타는 16세기 초반까지 봉건영주들이 계속 지배하게 되었다. 1530년에 몰타는 구호기사단에 양도되었다. 16~18세기에 투르크의 무역을 집요하게 방해한 이들 기사단은 몰타 섬 원주민과는 관계가 소원하여 별다른 사회적·경제적인 접촉이 없었다. 이들에 의한 통치는 1798년 6월 나폴레옹이 몰타 군도를 점령했을 때 끝났다. 1802년 아미앵 조약으로 몰타 군도는 구호기사단에게 반환되었으나 몰타인들은 이에 저항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가 유지되고 '몰타인의 권리선언'이 존중된다는 조건으로 대영제국의 국왕을 몰타의 통치자로 인정했다. 이 조건들은 1814년 파리 조약에서 영국에 의해 수용·승인되었다. 영국 지배 밑에서 몰타의 정치적 지위는 계속 헌법이 허용·정지·폐지되는 일련의 변천을 겪었다. 경제는 이곳 군사시설에 대한 영국의 필요성에 따라 좌우되었고 유명한 조선소가 발달해서 경제적 대들보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몰타는 지역 수비대를 구성했고 많은 해군을 차출했다. 영국이 몰타의 장관들과 함께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긴 했지만 몰타는 1921년에 자치정부를 이루었다가, 1936년에 다시 식민지 정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가 참전한 뒤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폭격기들로부터 심한 공중 폭격을 받았다. 1942년 4월 15일 조지 6세는 몰타 군도에 영국 최고 시민훈장인 조지 십자훈장을 수여했는데 이 훈장이 영연방에 속한 지역에 수여되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1964년 9월 21일 영연방에서 독립한 몰타는 1974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1979년 영국과의 동맹관계가 끝나자 몰타는 다른 나라들과의 협정을 통해 중립을 보장받으려고 애썼다. 1981년 10월 소련이 몰타의 중립적 지위를 지지한다는 협정에 서명했으며, 미국과의 협정체결도 계속 모색되었다.

Ġgantija megalithic temple complex
Ġgantija megalithic temple complex

몰타와 한국과의 관계

한-몰타 총리회담
한-몰타 총리회담
외교

1965년 4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1971년 노동당 정권 발족 이후 양국관계는 동결상태에 있다가 1987년 친서방정권이 재집권하면서 외교가 재개됐다. 현재 몰타 주재 한국 대사관은 이탈리아 대사관 내에서 겸임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과는 1971년 12월 외교관계를 맺었고, 1984년 5월에 평양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91년 폐쇄됐다. 2016년 윤병세 외교장관이 수교 51년 역사상 최초로 몰타를 방문해 조지 윌리엄 벨라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몰타는 한국에 직물의 심류를 수출하고 면직물·철강제품·차량부품·플라스틱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과 몰타는 대한민국 정부와 몰타 정부간의 입국사증 상호면제에 관한 교환각서(1993), 대한민국 정부와 몰타공화국 정부간의 각자의 영역간 및 그 이원의 항공 업무에 관한 협정(1997), 대한민국과 몰타공화국간의 소득에 대한 조세의 이중과세 회피와 탈세방지를 위한 협약(1998)을 체결했다.

문화교류

한국에서는 몰타로 여행을 가거나 어학연수를 떠나는 등 관광과 유학 위주의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몰타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133명이며,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몰타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8명이다.

참고문헌

・ 외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