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아스

모레아스

다른 표기 언어 Jean Moré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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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56. 4. 15, 그리스 아테네
사망 1910. 3. 31, 프랑스 파리
국적 그리스/프랑스

요약 그리스 태생 프랑스의 시인.
본명은 Y대체이미지nnis Papadiamant대체이미지poulos.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 시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프랑스 여자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1879년에 파리로 가서 카페에 자주 드나드는 문인들의 그룹에 친숙한 인물이 되었고 신문잡지의 문예란에도 자주 등장했다. 〈19세기 XIXe Siècle〉(1885. 8. 11) 〈피가로 Le Figaro〉(1886. 9. 18) 문예란에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퇴폐주의에서 비롯된 새로운 문예운동을 상징주의라는 이름으로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1886년 정기간행물 〈상징주의자 Le Symbolist〉를 창간했다.

프랑스에 가기 전, 그는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로 쓴 운문집 〈멧비둘기와 살모사들 Tourterelles et vipéres〉(1878)을 출판했다. 프랑스어로만 쓴 최초의 시집 〈유사 Les Syrtes〉(1884)와 〈애가집 Les Cantilénes〉(1886)은 퇴폐주의 및 상징주의 미학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열렬한 순례자 Le Pèlerin passioné〉(1891)의 서문에서 상징주의를 떠나 고전주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는 '로망파'를 창설했고, 제자인 레몽 드 라 타예드, 모리스 뒤 플레시, 에르네스트 레노 및 샤를 모라스와 함께 고전문학의 형식과 주제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유시를 버리고 고전문학에 영감을 준 소재를 이용했다. 〈환한 얼굴의 에논 Énone au clair visage〉(1893)과 〈에리필 Eriphyle〉(1894)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뒤에 다른 시들과 함께 〈시선집 1886~1896 Poèmes et sylves 1886~1896〉(1907)에 수록되었다.

그밖에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Iphigénie à Aulide〉(1903)라는 운문 희곡도 썼는데, 에우리피데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오랑주의 고대극장에 이어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마지막 작품인 〈서정시 Les Stances〉(1899~1920)에는 그의 지성이 변천되어간 과정이 힘차면서도 우수 어린 고전주의시로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