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카

멜라카

다른 표기 언어 Melaka
요약 테이블
위치 말레이 반도의 남서부
인구 901,700명 (2016 추계)
면적 1,652㎢
언어 말레이어
대륙 아시아
국가 말레이시아

요약 말레이시아의 행정구역. 주민 대부분이 중국인들인데 말레이인의 복식과 언어를 받아들였다. 1400년경 도시가 설립되었고 말레이 왕국을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1511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정복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이후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으나 1826년 영국의 말라카 해협 식민지 중 하나가 되었다. 싱가포르의 지위가 높아지자 쇠퇴하였지만 지금도 고무의 수출항이자 설탕·쌀 등을 수입하는 창구로서 중요하다. 주요수출품은 고무로 중국인들이 고무 생산에 참여한 후 대규모 농장과 소작지가 상당수 들어서 있다.

멜라카(Melaka)
멜라카(Melaka)

흐름이 완만한 멜라카 강 어귀 말라카 해협에 접해 있다.

1400년경 투마시크(지금의 싱가포르)의 통치자 파라메스바라가 자바의 마자파히트 왕국 군대에 쫓겨 당시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이곳으로 피신했을 때 세워졌다. 파라메스바라는 이곳에 말레이 왕국을 세웠다.

역대 왕들은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말레이 반도 전체에 세력을 넓혔으며, 멜라카는 상인들이 양식을 보급받고 언덕의 샘에서 맑은 물을 얻기 위해 머무르는 주요항구도시가 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 아폰수 알부케르케가 말라카를 정복하면서 말레이인의 통치는 끝이 났다. 16세기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인도·아랍·유럽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왔으며 포르투갈인들은 말라카 항을 통해 향신료 무역을 하여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1641년 이후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으나 1795년 영국이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이 두 나라의 경쟁관계는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런던 조약을 맺으면서 영국에 유리한 쪽으로 기울었고 1826년 말라카는 페낭·싱가포르와 더불어 최초의 말라카 해협 식민지 중 하나가 되었다.

말라카 강 하구에 심한 침니현상이 일어나는 데다 싱가포르의 지위가 높아지자 말라카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대식 항만시설은 앞바다 정박지에만 설치되어 있다. 강 하구에는 침니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0.8㎞ 정도 앞으로 튀어나온 작은 방파제(낮은 둑)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지금도 멜라카는 내륙지역에서 생산하는 고무의 수출항이자 설탕·쌀 등을 수입하는 창구로서 중요하다. 주변지역에는 과일·코코넛 소작지가 여럿 있다. 주요수출품인 고무는 말라카가 일찍부터 해외무역을 해왔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상업적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1898년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고무 생산에 뛰어든 이후 중국인 소유의 대규모 농장과 소작지가 상당수 들어서 있다.

멜라카 시에는 조용하고 느긋한 분위기가 감돈다. 도심지 단층건물 가운데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식민시대에 지은 것도 많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 중 상당수는 결혼을 통해 말레이인의 복식과 언어를 받아들인 상태이다. 바바 중국인(Baba Chinese)으로 알려진 이 혼혈인종은 말레이인·포르투갈인·네덜란드인의 혼혈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민족집단으로 꼽힌다.

멜라카 강 남쪽 둑에 면한 낮은 구릉에는 알부케르케가 설계했던 올드포트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인이 세웠던 산토파울 교회(1521)의 잔해가 남아 있다. 이 교회에 보관되었던 성 프란키스쿠스 하비에르의 유해는 1553년 인도 고아로 옮겨졌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시청건물을 비롯해서 그리스도 교회, 성 요한 성채, 문화박물관, 정훙덩 묘[曾洪登廟], 중국인 공동묘지가 있다. 공항이 있으며 콸라룸푸르·싱가포르와는 도로로 이어진다.

지도
멜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