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메이지

다른 표기 언어 Meiji Tenno , 明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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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52. 11. 3, 일본 교토[京都]
사망 1912. 7. 30, 도쿄[東京]
국적 일본

요약 일본 문화의 바탕 위에 서구사상과 서구적 개혁요소들을 받아들인 대표적 인물이다. 1866년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 덴노를 계승했다. 그의 재위기를 메이지 시대라고 부른다. 그는 250년간의 경제적?문화적 쇄국이 끝나고 여러 나라와 접촉이 재개되면서 근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호응하는 정책을 폈다.
1868년 ‘5개조 서문’을 발표, 서구화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그의 재위 기간 중 학제 공포, 내각제 채택, 메이지 헌법 공포, 의회개설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10년 조선을 일본 식민지로 삼는 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이지(明治)
메이지(明治)

본명은 무쓰히토[睦仁]. 그가 재위하는 동안 일본은 봉건국가에서 근대 세계의 열강으로 획기적으로 변모하는 데 성공했다(→ 메이지 유신). 고메이[孝明] 덴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60년 세자에 봉해졌으며, 1866년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 덴노를 계승했다. 1868년 즉위식을 거행하고 메이지[明治]라는 연호를 택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재위기를 메이지 시대라고 부른다. 그의 덴노 계승은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가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고메이와는 달리 그는 250년간의 경제적·문화적 쇄국이 끝나고 여러 나라와 접촉이 재개되면서 점차 증가하는 근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호응하는 정책을 폈다.

1868년에 '5개조 서문'(五個條誓文)을 발표했으며 이로써 일본은 서구화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가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명령이라는 형식으로 폐번치현, 학제 공포(1872), 내각제 채택(1885), 메이지 헌법 공포(1889), 의회 개설(1890)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또한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 수행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1910년에는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하는 칙령을 발포하기도 했다.

메이지는 일본 문화의 바탕 위에 서구사상이나 서구적 개혁요소들을 받아들인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식 복장과 서양요리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일본 시가(詩歌) 양식으로 씌어진 10만 여 수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