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섬

매섬

다른 표기 언어 Abigail Masham, Baroness Masham of Otes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1734. 12. 6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남작부인.
결혼 전 성은 Hill.

여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후견인이었던 말버러 공작부인 새러 제닝스와 옥스퍼드 백작 로버트 할리에게서 등을 돌린 탓으로 역사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그녀를 잘 알았던 조너선 스위프트는 그녀의 성품과 능력을 매우 칭찬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레반트 상인 프랜시스 힐은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투기로 파산했기 때문에 그 자녀들은 사촌이며 나중에 말버러 공작부인이 된 레이디 처칠이 부양했다. 레이디 처칠의 영향력을 이용해 그녀는 앤 여왕의 궁정에 들어갔고, 고분고분한 기질과 토리당 견해를 가진 덕분에 말버러 공작부인을 물리치고 여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1707년 6월 말버러 공작은, 그녀가 여왕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사촌인 로버트 할리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이미 앤 여왕 앞에서 여왕의 남편인 덴마크의 게오르 경의 침실 내관인 새뮤얼 매섬(1679[?]~1758)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말버러 공작부인과 그녀 사이에는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리는 1708년 2월 관직에서 밀려난 뒤 그녀를 통해 여왕과 교섭했으며 1710년에는 그녀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여왕이 대신들을 해임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왕실 내탕금 관리인 자리에 올랐으며 그 영향력을 이용해 오빠 잭은 대령이 되었고 남편은 1712년에 위트레흐트 조약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구성된 12명의 토리당 귀족에 들었다(그의 작위는 오츠의 매섬 남작이었음). 그러나 곧 그녀는 옥스퍼드와 불화를 빚었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앤 여왕이 옥스퍼드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볼링브루크 자작과 프랜시스 애터버리가 이끄는 재커바이트를 열렬히 지지한 그녀는 재커바이트와 하노버 가문의 왕위계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옥스퍼드의 태도에 더욱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결국 매섬과 옥스퍼드는 앤 여왕의 면전에서 언쟁을 벌였고 1714년 7월 27일 앤 여왕은 옥스퍼드를 재무장관직에서 해임하고 3일 뒤에 슈르스버리 공작을 임명했다. 그해 8월 1일 앤 여왕이 죽자 매섬은 궁정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