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크리스티나

다른 표기 언어 Maria Cristina de Bor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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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06. 4. 27, 이탈리아 나폴리
사망 1878. 8. 23, 프랑스 생타드레스
국적 스페인

요약 스페인 왕 페르난도 7세의 왕비.

남편을 설득하여 왕위계승법을 고치게 함으로써 딸 이사벨라가 여왕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처는 왕의 동생 돈 카를로스(카를로스 마리아)의 스페인 왕위계승권을 빼앗는 것이었으므로 제1차 카를로스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남편이 죽은(1833. 9. 29) 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절대권을 가진 섭정이 되었으나 그녀가 다스리는 동안 내란과 정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정부를 지지하고 있었으나 정치는 계속 불안정했고, 그녀는 절대주의자들의 의심을 덜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들을 만족시키지도 못했다. 반교회적인 정책을 썼지만 무질서와 음모가 계속되었으며 또한 신분이 낮은 페르난도 무뇨스와 몰래 결혼(1833)함으로써 많은 지지자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1836년 5월 15일 라그랑하에서 폭동이 일어난 뒤 1812년의 자유주의 헌법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카를로스파(派)에 승리를 거두어 내란을 사실상 끝낸 발도메로 에스파르테로 장군의 반발로 결국 섭정을 포기해야 했다(1840). 그뒤 이사벨라 2세 여왕의 통치기간에도 스페인 정치에 참여하려 애썼으나 실패하고 1854년 망명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