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마르코

다른 표기 언어 Saint Mark (the Evang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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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사망 ?,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요약 마르코는 <신약성서>에 실린 그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단편적이며 비평가들은 그 자료 대부분의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 가운데 신뢰할 만한 유일한 자료는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1장 24절인데, 이 구절을 보면 마르코라는 어떤 사람이 사도 바울로의 동역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로마에서 골로사이(지금의 터키 데니즐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부를 전하지만 그의 신원은 밝혀져 있지 않다. 그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10절에 나오는 성 바르나바의 사촌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는 듯하다.
이집트 교회는 마르코를 설립자로 내세우며, AD 4세기부터 알렉산드리아 교구를 '마르코 주교좌'라고 불러왔다. 마르코를 창시자로 삼는 다른 주교좌 도시로는 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 및 베네치아가 있으며, 이 두 도시는 그를 수호성인으로 삼는다. 마르코의 상징물은 사자이다.

마르코(Saint Mark (the Evangelist))
마르코(Saint Mark (the Evangelist))

〈신약성서〉에 실린 그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단편적이며 비평가들은 그 자료 대부분의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 가운데 신뢰할 만한 유일한 자료는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1장 24절인데, 이 구절을 보면 마르코라는 어떤 사람이 사도 바울로의 동역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로마에서 골로사이(지금의 터키 데니즐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부를 전하지만 그의 신원은 밝혀져 있지 않다. 그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10절에 나오는 성 바르나바의 사촌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는 듯하다.

〈사도행전〉 12장 25절, 13장 5절·13절, 15장 37절에서 요한으로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신약성서〉 모든 곳에서 라틴식 성인 마르코로 불린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있던 그의 어머니 집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중심지였고(12:12), 그는 바르나바와 바울로를 따라 안티오크(지금의 터키 안타키아)로 갔으며(12:25), 그곳에서 두 사람의 전도여행(13:5)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일행이 베르게(지금의 터키 이사니예 근처)에 도착했을 때 마르코는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13:13). 이 일로 바르나바와 바울로는 등을 돌리게 되는데, 이는 바르나바가 마르코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제의한 반면 바울로는 그가 떠난 일을 내세워 반대했기 때문이다(15:37~39). 그뒤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갔고 그뒤로는 〈사도행전〉에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저자는 바울로와 바르나바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는 데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마르코를 소개한 듯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확실한지 의심스럽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2:11~14)에서 바울로가 바르나바와 갈등을 겪게 된 경위를 말하는 내용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11절에서 바울로는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는 내가 하는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니 그를 데리고 오시오"라고 부탁하지만, 이 내용은 사도행전과 골로사이를 잘못 연관지음으로써 생긴 듯하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 5장 13절의 "내 아들 마르코"라는 인사말에서 볼 수 있듯이 마르코와 베드로는 퍽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며, 더욱이 사도교부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 따르면 마르코의 논문이 예수에 관한 베드로의 가르침에 근거했다고 한다.

후대 전승은 마르코가 예수에게 파송받은 72제자들(루가 10:1)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며, 예수가 잡힐 때 벌거벗은 채 도망간 청년(마르 14:51~52)이 바로 그였다고 한다. 이집트 교회는 마르코를 설립자로 내세우며, AD 4세기부터 알렉산드리아 교구를 '마르코 주교좌'(cathedra Marci)라고 불러왔다. 마르코를 창시자로 삼는 다른 주교좌 도시로는 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 및 베네치아가 있으며, 이 두 도시는 그를 수호성인으로 삼는다. 마르코의 상징물은 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