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포스

리시포스

다른 표기 언어 Lysippos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그리스

요약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특히 마케도니아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통치 기간(BC 336~323)에 아르고스와 시키온에서 활동한 유파의 지도자이다. 리시포스의 조각은 몸매가 호리호리한 새로운 인체 비례와 생생한 자연주의로 유명하였다. 리시포스는 원래 메달 제작자였으나 자연을 관찰하고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멘 남자〉를 연구하면서 스스로 조각술을 배워나갔다. 그는 폴리클레이토스의 이상적인 인체(남자) 비례법을 수정해 머리는 작게, 몸매는 가냘프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물상의 키가 더 커 보인다. 리시포스는 1,500점이 넘는 청동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중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진품에 가까운 복제품도 없다. 리시포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소년시절부터 대왕의 초상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여 대왕이 그에게만 자신의 초상 조각을 만들도록 할 정도로 많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상을 제작했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조각가.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통치 기간(BC 336~323)에 아르고스와 시키온에서 활동한 유파의 지도자이다. 리시포스의 조각은 몸매가 호리호리한 새로운 인체 비례와 생생한 자연주의로 유명하였다.

리시포스는 원래 메달 제작자였으나 자연을 관찰하고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멘 남자 Doryphorus〉를 연구하면서 스스로 조각술을 배워나갔다. 그는 폴리클레이토스의 이상적인 인체(남자) 비례법을 수정해 머리는 작게, 몸매는 가냘프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물상의 키가 더 커 보인다.

로마의 작가 대(大) 플리니우스(1세기)에 의하면, 리시포스는 1,500점이 넘는 청동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중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진품에 가까운 복제품도 없다. 그러나 몇 점의 복제품이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장 진품에 가까우며 그중 뛰어난 것으로는 〈아폭시오메노스 Apoxyomenos〉를 들 수 있다. 때 미는 기구로 기름에 찌든 피부를 문질러 닦고 있는 젊은 남자 운동선수를 묘사하고 있는 이 복제품은 큰 키에 가냘프고 우아하며 머리는 몸에 비례하여 작은데, 특히 머리카락과 두 눈을 정밀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원래 이것의 진품은 티베리우스 황제(AD 14~37 재위) 시대에 로마로 옮겨져 아그리파의 목욕탕 앞에 놓였다고 전해진다.

리시포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소년시절부터 대왕의 초상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여 대왕이 그에게만 자신의 초상 조각을 만들도록 할 정도로 많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상을 제작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원추형의 대좌에 안치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흉상(루브르 박물관 소장)으로, 여기에는 리시포스가 새겼다고 여겨지는 고대 비문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이 청동상과 영국박물관에 있는 대왕의 두상은 모두 양식이 〈아폭시오메노스〉와 비슷하다.

그밖에 리시포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판크라티온의 승자를 조각한 파르살로스의 〈아기아스 Agias〉·〈트로일로스 Troilus〉(올림픽의 승자, BC 372)·〈코리다스 Coridas〉(파티아 경기의 승자, BC 342), 타렌툼의 거대한 청동상 〈제우스 Zeus〉, 거대한 청동 좌상 〈헤라클레스 Heracles〉(타렌툼에서 로마로, 다시 콘스탄티노플의 경기장으로 옮겨졌으나 1022년에 용해되어 소멸됨), 로도스의 〈태양의 전차〉(말 4마리가 끄는 마차를 탄 아폴로상) 등이다.

2세기의 여행가 파우사니아스가 시키온의 장터에 세워져 있다고 묘사한 리시포스의 청동상 〈제우스〉는 3세기 로마 황제 카라칼라 시대의 동전에 축소되어 새겨졌는데, 그것은 양식면에서 〈아폭시오메노스〉와 비슷하다(→ 제우스). 시키온에 있던 지치고 우울한 모습의 〈헤라클레스상〉은 글리콘에 의해 자신의 서명을 새겨넣은 〈파르네세 헤라클레스상〉(현재 나폴리에 있음)으로 복제되었고, 이 복제품은 피렌체의 피티 궁에 있는 것을 비롯하여 현존하는 많은 복제품들의 원형이 되었는데, 피티 궁의 복제품에는 리시포스가 원작자로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