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

다른 표기 언어 Lewis and Clark Expedition

요약 미국 최초로 태평양 연안까지 육로로 가서 돌아온 탐험(1804~06).

메리웨더 루이스 대위와 윌리엄 클라크 중위가 이끌었다. 탐험 준비는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이 이루어지기 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다. 약 29~33세의 탐사대원 40여 명이 엄격한 야외훈련을 받았고 식물학·기상학·동물학에서부터 천문항법(天文航法), 인디언 수화(手話), 목공일, 총기수리, 보트 취급법에 이르기까지 숙달했다.

세인트루이스 근처에서 군사훈련과 보급물자 및 장비 구입으로 겨울을 보낸 뒤 1804년 5월 14일 탐사대는 미주리 강에서 3척의 보트에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식량은 돼지고기·밀가루·소금·비스킷 등이었고 도중에 야생동물과 물고기를 잡아 보충했다. 11월경에 미주리 강의 험한 벼랑을 넘어 지금의 노스다코타까지 진출했다. 그곳에서 작은 요새를 건설하고 친절한 만단 수족(族) 인디언과 더불어 편안한 겨울을 보냈다. 다음해 봄 출발에 앞서 루이스와 클라크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통역관 투생 샤보노를 채용했는데, 그는 인디언 아내인 사카자웨아와 어린 아들도 데려갔다. 사카자웨아도 역시 통역관으로 일했으며, 특히 쇼쇼니 인디언과 우정을 맺는 데 도움을 주었다. 탐사대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나가 지금의 몬태나에 도착했다. 거기서 말을 구입하여 로키 산맥 분수령을 넘었으며 클리어워터 강 상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카누를 만들어 클리어워터 강을 따라 내려가 스네이크 강에 도착했다. 11월 15일에는 컬럼비아 강 어귀에 이르렀다. 이들은 거기서 클랫소프 요새를 만들어 겨울을 났고 다음해 3월 마침내 돌아가는 길에 나서기 시작했다. 마리아스 강과 옐로스톤 강을 지나 미주리 강을 따라 내려갔으며, 1806년 9월 23일 흥분 속에서 드디어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다. 제퍼슨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루이스와 클라크는 탐험을 하는 동안 풍부한 정보가 담겨져 있는 엄청난 분량의 일지와 지도를 작성했다. 탐험은 이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 탐험으로 대륙을 쉽게 횡단할 수 있는 물길(오랫동안 찾던 북서 항로)이 있다는 신화가 깨어졌다. 또 일지에는 흥미있는 모험담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탐험중에는 단지 1명만이 죽었는데, 이것은 탐사대가 적대적인 인디언, 사고, 질병, 회색곰과 방울뱀, 위험에 노출, 반기아상태 등을 겪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각각 650㏊의 공유지를 받았으며, 부하대원들도 1인당 130㏊의 땅과 2배의 급료를 받았다. 뒤에 루이스는 루이지애나 준주의 지사가 되었고, 클라크는 미주리 준주의 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