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린덤 루이스

퍼시 린덤 루이스

다른 표기 언어 (Percy) Wyndham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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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2. 11. 18, 캐나다 노바스코샤 애머스트 근처의 한 요트
사망 1957. 3. 7,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미술과 문학에서 예술과 산업과정의 관계 규명을 위해 노력한 추상적인 소용돌이파 운동을 주창했다.
1909년 영국에 돌아온 뒤 단편소설을 쓰면서 그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14년 소용돌이파 문예지 〈블라스트〉 창간호가 나왔다. 이 잡지에 실린 루이스의 글은 이미지즘 시의 경향을 보이지만, 그와 동료들이 그린 그림의 구상은 거친 형상을 격렬하고 극적으로 처리해 속도와 기계문명을 찬양하는 미래파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
1920년 후반부터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30년 부유한 문학애호가들에게 일격을 가한 거대한 풍자소설 〈신의 원숭이들〉을 내놓아 런던 문단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30년대에는 큰 업적들을 이루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거의 없었다. 1939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그는 순회강연과 초상화 대리점 운영으로 재정 회복에 힘썼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귀향이 어렵게 되자, 뉴욕 시에서 체류했으나 사정이 좋지 않아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의 한 낡은 호텔에서 3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미술과 문학에서 예술과 산업과정의 관계 규명을 위해 노력한 추상적인 소용돌이파(Vorticist) 운동을 주창했다.

1893년경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런던으로 이사했다.

16세에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3년 후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파리에 갔다. 파리에서는 그림공부를 하면서 소르본대학의 강의를 들었다. 1909년 영국에 돌아온 뒤 단편소설을 쓰면서 그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14년 소용돌이파 문예지 〈블라스트 Blast〉의 2권 중 창간호가 나왔다. 이 잡지에 실린 루이스의 글은 이미지즘 시의 경향을 보이지만, 그와 동료들이 그린 그림의 구상은 거친 형상을 격렬하고 극적으로 처리해 속도와 기계문명을 찬양하는 미래파(Futurism)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포병장교로서 전방에서 근무했고, 그뒤 전쟁예술가로 위촉받아 전투장면에 관한 그림 몇 점과 스케치를 그렸다. 1918년 첫소설 〈타 Tarr〉를 출판했으나, 1926년까지 은둔생활을 했다. 이당시에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해, 정치이론서 〈피지배의 예술 The Art of Being Ruled〉, 현대예술의 주관주의와 유동성 숭배에 대한 비판서 〈시간과 서구인 Time and Western Man〉, 셰익스피어와 마키아벨리를 연구한 〈사자와 여우 The Lion and the Fox〉, 단편소설과 풍자에 대한 평론을 모은 〈황야의 인간 The Wild Body〉 등이 쏟아져나왔다.

1930년 부유한 문학애호가들에게 일격을 가한 거대한 풍자소설 〈신의 원숭이들 The Apes of God〉을 내놓아 런던 문단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30년대에는 큰 업적들을 이루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거의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항복자 The Surrender of Barcelona〉(1936)와 시인 T.S. 엘리엇의 초상화(1938)를 비롯한 유명한 그림 몇 점과 문예비평 〈예술없는 인간 Men Without Art〉(1934), 회상록 〈파괴와 폭격 Blasting and Bombardiering〉(1937), 소설 〈사랑을 위한 복수 The Revenge for Love〉(1937)를 비롯한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1930년대말에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1932년의 고소사건에서 두 번이나 승소하자 출판업자들이 그를 멀리했고 게다가 파시즘을 찬양하는 책들과 논문을 발표해 많은 친구를 잃었다. 뒤에 정치적 오류를 시인했지만 평판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1939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그는 순회강연과 초상화 대리점 운영으로 재정 회복에 힘썼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귀향이 어렵게 되자, 뉴욕 시에서 체류했으나 사정이 좋지 않아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의 한 낡은 호텔에서 3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1954년에 쓴 소설 〈자기경멸 SelfCondemned〉은 이러한 상황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쟁이 끝나자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영국방송공사(BBC)의 기관지 〈리스너 The Listener〉의 미술평론가로 일하게 되었다. 이 잡지에서 그는 나중에 유명해진 마이클 에어턴과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칭찬하는 기억할 만한 기사들을 쓰면서, 1951년 시력을 잃을 때까지 활동했다. 또한 2번째 회고록 〈거친 임무 Rude Assignment〉(1950), 풍자적인 단편소설 〈썩어가는 언덕 Rotting Hill〉(1951), 1928년에 착수된 대규모 비유적 환상소설의 후편 〈인간의 시대 The Human Age〉(1955~56) 등을 썼다.

죽기 1년 전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에서 회고전시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