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양식

로코코 양식

다른 표기 언어 Rococo style

요약 로코코 양식은 루이 14세의 치세 동안 유행한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벽면·천장·소조 등을 조개나 자연물 형상뿐 아니라 C자·S자 같은 기본형태 위에 교차곡선과 역곡선을 그린 문양으로 장식했는데, 대칭보다는 비대칭이 기본이었다. 색상은 밝은 파스텔색, 상아빛 흰색, 황금색이 주로 쓰였으며 유리도 자주 사용되었다.
1730년대 로코코 양식은 독일어권 가톨릭 국가로 전파되었는데, 그곳에서 연극적 공간조형 효과에 관심을 둔 바로크풍 취향과 남부 독일의 환상적 요소가 프랑스식 우아함과 조화되어 훌륭한 종교 건축 양식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로코코 양식은 주로 베네치아에 집중되었다. 로코코 양식은 1750년대에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760년대에 새롭고 보다 간소한 신고전주의 운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이에른 대성당(Bavaria cathedral)
바이에른 대성당(Bavaria cathedral)

가볍고 정교하며 우아하고 고상하나 곡선과 자연 형상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로코코라는 말은 인조동굴을 장식하는 데 쓰인, 조가비로 장식된 바위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로카유'(rocaille)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 로코코 양식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의 웅장함과 그의 치세(治世) 동안 유행한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여러 명의 실내장식가·화가·조각가, 그중에서도 피에르 르 포트르, J. -A. 메소니에, 장 베랭, 니콜라 피노 등은 파리 귀족의 새로운 주택을 경쾌하고 보다 아늑하게 장식했는데 이 양식이 동판화에 의해 프랑스 전역에 퍼졌다.

로코코 양식에서는 벽면과 천장, 소조(塑造) 등을 조개나 자연물 형상뿐 아니라 'C'자(字)나 'S'자 같은 기본형태 위에 교차곡선과 역곡선(逆曲線)을 그린 문양으로 장식했는데, 대칭보다는 비대칭을 기본으로 삼았다. 색상은 밝은 파스텔색, 상아빛 흰색, 황금색이 주로 쓰였으며 이 양식의 장식가들은 유리도 자주 사용했다.

로코코 양식(Rococo style) 거울
로코코 양식(Rococo style) 거울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좋은 예로는 장 오베르가 장식한 샹티이의 프티 샤토에 있는 무슈 르 프랭스의 살롱(1722 완성)과 제르맹 보프랑이 장식한 파리 수비즈 호텔의 객실(1732 시작)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1715~45년의 장식예술은 로코코풍이 강했던 시기였는데, 그 이유는 이 양식이 가구·벽걸이·자기 등과 금·은 세공품에 잘 어울리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로코코 회화는 앙투안 바토의 우아하지만 약간 우울한 분위기의 그림에서 시작되어, 프랑수아 부셰르의 쾌활하고 육감적인 나신(裸身) 그림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자유분방하게 채색된 풍속화로 끝을 맺었다.

앙투안 바토(Antoine Watteau)
앙투안 바토(Antoine Watteau)
마리 루이스 멀피(Marie-Louise O'Murphy)
마리 루이스 멀피(Marie-Louise O'Murphy)

로코코 초상화법은 장 마르 나티에와 장 바티스트 페르노가 대가였다. 프랑스풍의 로코코 회화는 대체로 신화와 궁정을 주제로 하고 안이하고 경박한 처리, 풍부하고 섬세한 붓놀림, 비교적 가벼운 색조, 육감적인 채색 등이 특징인데, 로코코풍 조각은 작은 크기에 친밀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730년대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에서 독일어권 가톨릭 국가로 퍼져나갔는데 그곳에서 연극적 공간조형 효과에 관심을 둔 바로크풍 취향과 남부 독일의 환상적 요소가 프랑스식 우아함과 조화되어 종교 건축의 훌륭한 양식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밖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로코코풍 건물은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공원에 있는 세련되고 섬세한 아말리엔부르크(1734~39), 레지덴츠테아터(1750~53, 제2차 세계대전 후 개축)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프랑수아 드 퀴빌리에에 의해 건축되었다. 또 가장 훌륭한 독일의 로코코식 성당에는 발타자르 노이만이 설계한 바이에른의 리히텐펠스 근처에 있는 피어젠하일리겐(1743 착공)과 도미니쿠스 치머만이 건축하고 그의 형 요한 바티스트 치머만이 장식한 뮌헨 근처의 비스키르헤(1745 착공)가 있다(비스). G. W. 폰 노벨스도르프와 요한 미카엘 피셔도 뛰어난 로코코 양식 건축물을 세웠는데 회반죽 세공과 다른 장식을 많이 이용했다.

이탈리아에서 로코코 양식은 주로 베네치아에 집중되었고, 잠바티사 티에폴로의 대형 장식 회화에 잘 나타나 있다.

프란체스코 구아르디와 카날레토의 도시 전망도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너무 자잘한 장식이라는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고 1750년대에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760년대에 새롭고 보다 간소한 신고전주의 운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로코코라는 말은 바로크 시기의 끝 무렵, 1740년대에서 1770년대까지 작곡된 경쾌하고 우아하며 아주 장식적인 음악을 지칭하기도 한다. 요제프 하이든과 어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초기 음악을 로코코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그당시 시작되고 있었던 고전음악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서양음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