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큘리스 조지 로버트 로빈슨

허큘리스 조지 로버트 로빈슨

다른 표기 언어 Hercules George Robert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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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24. 12. 19, 아일랜드 웨스트미스 로스미드
사망 1897. 10. 28,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식민지 행정관.
1st Baron Rosmead of Rosmead and of Tafelberg(1896~)라고도 함.

1880~89년과 1895~97년에 남아프리카의 식민지 고등판무관을 지냈다. 얼마 동안 군대에 있다가 아일랜드 행정담당 공무원으로 일했다. 1854년 서인도제도에 있는 몬트세라트 책임자로 처음 해외에 파견되었고, 1855년에는 세인트키츠의 부총독이 되었다.

1859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고 1859~65년 홍콩에서 행정을 담당한 뒤 실론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도로건설과 관개사업에 힘쓰는 등 의욕적으로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1872년에는 뉴사우스웨일스 자치식민지 총독이 되었고, 1874~75년에는 피지 제도를 영국에 할양하는 일에 관련된 특별 임무를 맡았다. 그는 잠시 뉴질랜드 총독을 지낸(1879~80)뒤 1881년 1월 케이프 식민지 총독 겸 남아프리카 고등판무관으로 남아프리카에 갔다. 그의 도착과 때맞추어 그곳에서는 트란스발 공화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1881년 8월에 열린 프리토리아 회의가 트란스발 공화국 보어인들의 영국에 대한 불만 요인을 없애지 못하자, 1883년 보어 대표단은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이 일을 심의하기 위해 로빈슨은 런던으로 소환되었고 1884년 2월에 런던 회의가 열렸다.

로빈슨은 이미 1881년에 케이프 식민지 정계에 뛰어들었던 세실 존 로즈의 우려에 공감을 나타냈다. 즉 트란스발의 보어인들과, 1884년 남서아프리카에 보호령을 세운 독일이 협력하면, 북아프리카로 가는 영국의 통로인 베추아날란드(지금의 보츠와나)로의 팽창이 저지될 수도 있다는 염려였다. 결국 영국은 찰스 워렌 경이 이끄는 원정군을 베추아날란드로 파견한 뒤 1885년에 이곳을 합병했다.

로빈슨은 또한 모펏 조약(1888. 2)을 체결해 사실상 마타벨럴란드를 영국령으로 만들었으며, 러드 광산 채굴권을 승인함으로써 1889년 로즈가 영국령 남아프리카 회사의 설립 특허를 얻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로빈슨은 1889년 사임해 케이프 식민지를 떠나 영국으로 갔다. 그러나 로즈버리 경의 내각은 1895년 5월 이전의 직책을 다시 맡겨 그를 남아프리카로 보냈다. 이제 케이프 식민지 총리가 된 로즈에게는 70세가 넘고 건강이 나쁜, 고분고분한 로빈슨이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의 2번째 임기에서 중요한 일은 L. S. 제임슨의 습격사건(1895. 12) 때 고등판무관으로서 위기를 잘 넘긴 것이다. 제임슨이 경솔하게도 트란스발을 습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그는 곧바로 전보를 쳐 습격자들을 막았다.

로빈슨은 건강이 나빠져 1896년 5월에 영국으로 돌아왔고, 8월에 로스미드 남작으로 귀족 지위에 올랐다. 짧은 기간 동안 케이프 식민지에 들른 다음, 1897년 4월 영영 남아프리카를 떠났으며 몇 달 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