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른 표기 언어 Leonardo Pisano 동의어 Leonardo Fibonacci,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요약 테이블
출생 1170
사망 1240 이후
국적 이탈리아

요약 중세 이탈리아의 수학자.
본명은 Leonardo Fibonacc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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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생애
  3. 정수론에 대한 기여
레오나르도(Leonardo Pisano)
레오나르도(Leonardo Pisano)

개요

인도와 아라비아 수학에 대한 유럽 최초의 연구서 〈계산판에 대한 책 Liber abaci〉(1202)을 썼다.

생애

자신의 수학 저술에 나타난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의 소년시절에 피사 상인인 아버지 굴리엘모는 북아프리카 항구 부기아(지금의 알제리아 베자이아)에서 피사 상인사회의 영사, 즉 주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곧 아버지와 합류했다. 아버지는 앞날에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계산을 공부시키기 위해 그를 아랍 선생에게 보냈다. 그는 뒤에 〈계산판에 대한 책〉에서 9개의 인도 숫자의 기법을 배우는 즐거움을 묘사했다. 그는 이집트·시리아·그리스·시칠리아·프로방스를 여행했으며, 다른 수체계와 계산법을 공부했으나 이 힌두-아라비아 숫자만큼 만족스러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의 〈계산판에 대한 책〉이 처음 나타났을 때 힌두아라비아 숫자는 9세기 아랍의 수학자·천문학자인 알 화리즈미의 번역물을 통해 소수 유럽 지식인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인도 수들은 9, 8, 7, 6, 5, 4, 3, 2, 1이다. 이 9개의 수들과 기호 0을 가지고……아래와 같이 어떤 수도 쓸 수 있다"고 표기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7장은 표기법을 다루고 있는데, 수의 위치가 기준단위인 1, 10, 100 등을 결정하는 위치값(place value) 원리와 산술 연산에서 수들의 사용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기법들을 그당시 이윤수익, 물물교환, 환전, 도량형의 전환, 공동경영, 이자 등과 같은 실제적인 상업문제에 응용했다.

대부분의 연구는 다분히 사변적이었다. 즉 비율(비율을 찾는 어림셈 방법으로 3수법과 5수법 같은 인기있던 중세 기법), 거짓위치법(거짓으로 가정하여 문제를 푼 뒤 비율에 의해 수정하는 방법), 근의 계산, 숫자의 성질, 대수와 기하 같은 것들이었다. 1220년 기하학 요약논문인 〈기하학 연습 Practica geometriae〉을 펴냈는데,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본 Elements〉과 〈나눗셈에 대하여 On Divisions〉를 기초로 한 정리들이 8장에 걸쳐 담겨 있다.

〈계산판에 대한 책〉은 널리 복사·모방되었고, 과학을 후원해 '세계의 불가사의'란 별명을 얻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시선을 끌었다.

1220년대에 그는 피사에서 황제 앞에 나오도록 초청받아 프리드리히의 과학분야 측근이었던 팔레르모 출신 존으로부터 일련의 문제들을 질문받았다. 이중 3문제는 책에 소개되었다. 처음 2문제는 아랍 형태의 부정방정식이었는데, 이는 3세기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가 개발한 것이었다(디오판토스 방정식). 이것은 2개 이상의 미지수를 가지는 방정식으로 해는 유리수(정수나 분수)이어야 했다.

3번째 문제는 3차방정식(3제곱을 갖는 식) x3+2x2+10x=20(현대 대수표기법으로 바꾼 표현)이었는데, 레오나르도가 근사해법인 시행착오법을 사용해서 풀었다.

그의 해 1°2274233440 은 60진법 분수(60을 밑으로 하는 바빌로니아 수체계를 사용한 분수)로 1+22/60+7/3,600+42/216,000+……인데, 근대 십진수(1.3688081075)로 바꿀 때 소수점 이하 9번째까지 정확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그의 해는 창의력과 정확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수론에 대한 기여

레오나르도는 몇 년 동안 황제 및 그의 학자들과 문제를 교환하면서 서신왕래를 했으며, 황제에게 〈제곱수에 대한 책 Liber quadratorum〉(1225)을 헌정했다.

2차(제곱수를 포함하는) 디오판토스 방정식에 주력한 〈제곱수에 대한 책〉은 그의 걸작품으로, 체계적으로 정돈된 정리들을 모은 것이다. 이중 많은 수가 그가 발견한 것이었고 자신만의 증명방법으로 일반 해를 얻기도 했다. 가장 창의로운 연구는 합동수(주어진 수로 나눌 때 나머지가 같은 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제곱수에 더하거나 빼어 제곱수가 되는 수를 찾는 독자적인 해를 연구했다. x2y2x2y2이 둘 다 제곱수가 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3변이 모두 유리수로 된 직각3각형 면적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계산판에 대한 책〉이 더 영향력 있고 다루는 범위가 넓지만, 〈제곱수에 대한 책〉만으로도 디오판토스와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 사이에서 정수론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1228년 그는 〈계산판에 대한 책〉을 수정하여 황제의 수석학자 미하엘 스코트에게 헌정했다.

그날 이후 1240년까지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 피사 시는 시에 대한 봉사의 대가로 수당과 함께 연금으로 20피사 파운드를 수여했다. 사망한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힌두-아라비아 숫자의 사용을 확산시킨 역할을 제외하면 그가 수학에 미친 공헌은 대체로 잊혀져왔다. 그의 이름은 〈계산판에 대한 책〉의 문제에서 파생된 피보나치 수열(다음 인용문 참조) 때문에 근대 수학자들에게 알려졌다(재귀함수).

"어떤 사람이 모든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장소에 1쌍의 토끼를 넣었다.

만약 각 쌍이 새로운 1쌍을 매달 낳고 각 쌍은 2번째 달부터 생산능력을 가진다면 1년 뒤에는 얼마나 많은 쌍의 토끼들이 존재하겠는가?"

문제가 되는 수열 1, 1, 2, 3, 5, 8, 13, 21, 34, 55(그는 첫 항을 뺐음)는 유럽에 알려진 최초의 점화수열(둘 이상의 연속항들 사이의 관계가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열)로 각 수는 앞선 두 항들의 합이다. 이 수열에서의 항들은 1634년 프랑스 출신 알베르 지라르가 대수표기법을 발전시킨 뒤 식으로 표현되었다.

un+2=un+1+un이며 u는 수열의 항, 밑에 붙는 글자는 위치이다. 1753년 글래스고대학교의 수학자 로버트 심슨은 수가 커짐에 따라 뒤따르는 수들 사이의 비율은 ø(파이), 즉 고대에 평균극한비율 또는 황금분할이라고 부르던 값(1.6180……), 또는 (1+√5/2)에 접근함을 알았다(황금비).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에두아르 뤼카가 피보나치 수열이란 말을 만들었을 때,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해바라기 머리의 나선, 솔방울, 수펄의 혈통(족보연구)과 같은 예들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달팽이 껍데기, 줄기 위의 잎눈의 배열, 동물 뿔 등과 관련된 로그(등각) 나선을 발견하기도 했다.

1962년 '피보나치 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제에 관한 생각을 교환하고 연구를 자극시키기 위해' 피보나치 협회가 캘리포니아에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