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 왕가

랭커스터 왕가

다른 표기 언어 House of Lancaster

요약 플랜태저넷 왕가의 한 분가.

15세기에는 잉글랜드 왕 헨리 4세와 헨리 5세, 헨리 6세를 배출했으나 요크 왕가에 패배한 뒤 왕위를 튜더 왕조에 넘겨주었다.

랭커스터 왕가
랭커스터 왕가

랭커스터라는 성은 헨리 3세의 막내 아들인 '곱사등이' 에드먼드(1245~96)가 1267년 랭커스터 백작위를 받았을 때 생겨났고, 그의 2번째 부인인 아르투아의 블랑슈가 낳은 두 아들 토머스(1322 죽음)와 헨리(1345 죽음)가 작위를 이어받았다. 헨리 백작의 아들 헨리(1361 죽음)는 랭커스터 공작위를 얻었는데 그는 2명의 딸밖에 없었다. 큰딸 모드는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과 결혼했지만 헨리가 죽은 이듬해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둘째 딸 블랜치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이며 그녀의 남편인 곤트의 존(1399 죽음)이 가문을 이었다.

존이 죽은 뒤 그의 아들 헨리는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헨리 4세로 왕위에 올랐다. 그뒤부터 랭커스터 공작령은 왕령(王領)에 포함되었고 랭커스터 가문 출신 왕인 헨리 4세, 5세, 6세가 60년 동안 잉글랜드를 다스렸다.

그 가운데 헨리 5세만이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그가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뒤의 헨리 6세)은 왕위계승에 있어서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헨리 4세는 랭커스터 가문의 조상이 헨리 3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헨리 4세라고 칭했는데, 그 이유는 존의 형으로서 왕위 계승 서열이 더 높은 클래런스 공작 라이어넬의 후손들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존의 동생이자 요크 공작인 에드먼드의 후손과 클래런스 공작의 후손들이 헨리 6세를 몰아냈고 에드먼드의 후손인 요크 공작이 에드워드 4세로 왕위에 올랐다.

그뒤 랭커스터의 혈통은 존의 서자(庶子)가 창시한 보퍼트 가문의 후손인 헨리 7세에게 이어졌다. 헨리 7세에 의해 튜더 왕조가 시작되면서부터 랭커스터의 모든 영지는 왕령에 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