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이드

드루이드

다른 표기 언어 Druid

요약 드루이드는 고대 켈트족의 사제·교사·법관 역할을 담당했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갈리아에서는 기사계급과 더불어 존경받는 계급이었다고 한다. 공적·사적인 제사를 주관했으며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또 모든 공사의 분쟁을 심판해 벌을 내렸으며, 이들의 판결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제사 참석을 금지 당했는데, 이는 당시 가장 혹독한 벌로 여겨졌다.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고 세금도 내지 않는 특권을 가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뜻에 따라, 또는 자진해서 드루이드가 되었다. 주로 고대시·자연철학·천문학·신화를 배웠고, 영혼불멸을 주요교리로 삼았다. 많은 학자들은 고대 인도-유럽 문화권의 사제직이 변해서 동양에서는 힌두교의 브라만이 되었고 서양에서는 켈트족의 드루이드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드루이드
드루이드

주로 참나무 숲에서 자주 모인 듯하며 사제·교사·법관 역할을 했다. 최초의 기록은 BC 3세기 때 보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드루이드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그에 따르면 갈리아에서는 기사계급과 더불어 존경받는 계급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공적·사적인 제사를 주관했으며 많은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또 모든 공사의 분쟁을 심판해 벌을 내렸으며, 이들의 판결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제사 참석을 금지당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가장 혹독한 벌로 여겨졌다. 드루이드들 가운데에는 우두머리가 있었고 그가 죽으면 다른 드루이드가 그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공덕이 비슷한 사람이 여러 명 있을 때에는 투표로 결정했으며 때로는 결투에 의하기도 했다. 드루이드들은 카르누테스족의 영토에 있는 성지(聖地)에 매년 모여 그들에게 제출된 법적 분쟁에 판결을 내렸는데 모든 갈리아인들은 그 성지를 자신들의 중심지로 여겼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드루이드들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고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이런 특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뜻에 따라, 또는 자진해서 드루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드루이드는 그들의 고대시(古代詩)·자연철학·천문학·신화를 배웠는데 어떤 이들은 20년 동안이나 학문을 닦기도 했다. 이들은 영혼불멸을 주요교리로 삼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영혼이 옮아간다고 믿었다. 제사 때에는 중병에 걸린 환자나 죽음에 직면한 군인들을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는데 작은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커다란 우상 속에 산 사람들을 채워넣어 불살랐다. 보통 범죄자들을 제물로 바쳤지만 필요한 때에는 죄없는 사람들까지도 희생시켰다.

드루이드에 관해 가장 자세한 설명을 남긴 것은 카이사르이지만 그도 이런 사실들 일부는 스토아 철학자 포세이도니오스에게서 배웠던 것 같다. 포세이도니우스가 한 이야기나 드루이드 연례 모임과 우두머리 선출에 대한 카이사르의 묘사는 가끔 중세 초기의 아일랜드 전설에도 나오며 이를 통해 이들의 말이 사실에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드루이드 의식은 초기에는 숲속 빈터에서 열렸고 성전에서 의식을 행한 것은 그들 지역이 로마 세력권에 들어간 뒤였다.

티베리우스 황제(AD 14~37 재위) 때 갈리아 지방 드루이드들은 탄압을 받았고 얼마 뒤 브리튼 섬에서도 박해를 당했다. 아일랜드의 드루이드들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뒤에는 사제 역할을 빼앗겨 시인·역사가·법관 역할에 국한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고대 인도-유럽 문화권의 사제직이 변해서 동양에서는 힌두교의 브라만이 되었고 서양에서는 켈트족의 드루이드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