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공작연맹

독일공작연맹

다른 표기 언어 Deutscher Werkbund

요약 1907년 뮌헨에서 창설된 최초의 예술가 조직.

대량생산품과 건축을 위해 좋은 디자인과 기술을 장려하려 애썼고, 건축물을 비롯하여 산업·상업·가정용품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숙련공·건축가로 구성된 영향력이 큰 단체이다.

지도자인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와 앙리 반 데 벨데(벨기에)는, 19세기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일으켜 산업공예를 디자이너와 공예가들의 공동사업으로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을 받으며 그의 생각을 기계생산품까지 확대시켰고, 또 장식성을 배제한 기능위주의 형태성을 주장하였다. 창설된 후 곧이어 연맹은 2파(派)로 나뉘는데 무테지우스 일파가 기계대량생산과 디자인 표준화의 효용성을 주장한 반면 반 데 벨데파는 예술가의 개인성에 가치를 두었다. 결국 연맹은 1914년 쾰른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무테지우스의 입장을 채택했다.

독일공작연맹은 곳곳에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오스트리아의 오스트리아 공작연맹(1912), 스위스의 스위스 공작연맹(1913) 등 비슷한 조직이 생겨났고 1915년 스웨덴 공예가조합이 이 취지에 따라 조직을 변경했으며, 독일공예가연맹을 본떠서 영국 디자인 산업협회(1915)도 창설되었다.

연맹의 영향력은 쾰른에서 열린 산업미술 및 건축전시회(1914)를 계기로 더욱 커졌다.

전시된 건물들 중에는 강철·콘크리트·유리를 사용한 근대 건축의 가장 유명한 본보기가 되는 반 데 벨데의 극장, 발터 그로피우스의 관청건물, 도이츠 기계공장 파빌리언 및 차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연맹의 활동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종전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의미있는 전시회(1927)를 열어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했다.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주관한 이 전시회는 그당시 유럽의 일반 주택 건축의 발전을 요약하고 있었다. 무테지우스의 사상을 받아들인 미스,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전시참가 건축가들은 고도로 표준화된 재료와 디자인으로 대규모 주택을 값싸게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1930년 그로피우스가 파리에서 열린 산업예술과 건축전시회에서 라슬로 모호이 노디, 마르셀 브로이어, 헤르베르트 바이어와 함께 주관했던 공작연맹작가 전시품은 그 가치(재료와 디자인의 표준화를 통한 대단위 주택)가 드높게 인정되고 재강조되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독일 나치정권이 등장한 1933년 연맹은 해체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