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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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테이블
출생 1834년 3월 24일, 영국 런던 근교 월샘스토
사망 1896년 10월 3일, 런던 근교 해머스미스
국적 영국

요약 미술공예운동을 일으킨 19세기 영국의 아르누보 양식 디자이너 및 화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엑스터 칼리지에서 친구인 화가 번 존스를 만났고, 건축에 대한 존 러스킨의 글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결혼 무렵 중세풍 가구의 디자인에서 출발, 실내 장식과 가구 공예 등을 시작했다. 그는 '격자무늬', '데이지무늬', '과일무늬', '석류무늬'를 바탕으로 한 벽지를 개발했으며, 직물과 카펫 등으로 아름다운 염색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활자체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지상의 낙원>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다.

모리스(William Morris)
모리스(William Morris)

대가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13살 때 예비학교에서 바로 말버러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학교 친구는 그를 "땅땅한 몸매에 강한 인상을 주며 하이 칼라에 검은 곱슬머리, 착하고 친절하나 화가 나면 무서운 소년"으로 기억했다. 1853년 옥스퍼드대학교 엑스터 칼리지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평생 지기가 된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번 존스를 만났다. 둘은 고교회파(High Church)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주위 사람들은 그들이 성직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존 러스킨이 건축의 사회윤리적 기초에 관해 쓴 글은 그에게 '계시와 같은 충격'을 주었다.

1856년 학위를 받은 후, 고딕양식 부흥주의자인 건축가 G.E. 스트리트의 옥스퍼드 사무실에 취직했다. 같은 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매거진 The Oxford and Cambridge Magazine〉의 첫 12개월분을 재정적으로 도왔고, 거기 실렸던 그의 시 여러 편은 2년 뒤 출간된 훌륭한 저서 〈귀네비어를 변론함 외(外) The Defence of Guenevere and Other Poems〉에도 나와 있다.

스트리트, 번 존스와 함께 벨기에와 북부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그는 한스 멤링이나 반 에이크 형제의 15세기 회화와 아미앵·사르트르·루앙 성당 등을 처음으로 보고 중세 예술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확인했다.

이때 그는 라파엘 전파(前派)와 단테·가브리엘·로제티에게 강한 영향을 받아 회화를 위해 건축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함께 15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맬로리의 〈아서 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을 바탕으로 아서 왕의 전설을 옥스퍼드 유니언의 벽에 그렸다. 그가 이젤에 그린 그림 중 지금까지 전하는 작품은 〈귀네비어 여왕 Queen Guenevere〉(테이트 미술관)뿐이다.

그는 그의 모델이던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의 제인 버든과 1859년에 결혼했으나 그 결혼은 둘 다에게 불행이었다. 1856~59년에는 런던에 있으면서 중세풍 가구를 디자인했다. 결혼 후에는 스트리트 사무실에서 만난 건축가 필립 웨브에게 벡슬리히스에 자신의 집 레드 하우스(Red House)를 짓도록 위임하고 자신은 몇몇 친구들과 이 집의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을 했다. 이때 공예가 연합 설립을 구상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은 1861년 4월 모리스마셜포크너사(社)로 구체화되었다.

이들 외에 구성원은 포크너, 포드 매덕스 브라운, D.G. 로제티, 웨브, 번 존스 등이 있다. 이들은 1862년 사우스켄싱턴에서 열린 국제 전람회에 스테인드 글라스, 가구, 자수 등을 출품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G.F. 보들리가 짓던 일련의 교회에 장식을 맏게 되었다. 이 회사의 뛰어난 작품은 번 존스의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 교회를 위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 연작과 모리스와 웨브의 교회 천장 장식이다.

1861년과 1862년 두 딸 제니와 메이가 태어났고, 레드 하우스에서 지낸 약 5년간은 그의 생애에 가장 행복한 때였다.

과로로 류마티스열을 몇차례 앓고 난 뒤인 1865년 그는 런던 불룸즈버리로 옮겨갔고 이사한 그의 집의 장식은 모리스 회사가 맡았다. 그가 처음으로 '격자무늬', '데이지무늬', '과일무늬', '석류무늬'를 디자인한 것은 1862~64년이며 점차 완숙의 경지를 향해갔다.

모리스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작품은 낭만적인 이야기 〈제이슨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Jason〉(1867)이다.

그후로는 극적인 감정을 절제하거나 아름다움 속에 묻어둔 작품을 썼으며, 이런 경향은 중세 고전작품에 기초를 둔 설화형식의 시 〈지상의 낙원 The Earthly Paradise〉(1868~70)과 〈Story of Sigurd the Volsung and the Fall of the Niblungs〉(1876)에서 두드러진다.

Story of Sigurd the Volsung and the Fall of the Niblungs
Story of Sigurd the Volsung and the Fall of the Niblungs

1875년부터 식물염료를 실험하기 시작했고 직물, 카펫, 태피스트리 등에 아름다운 염색작품을 남겼다.

1877년 처음으로 '장식예술에 관하여'를 강연을 했고, 1882년 그동안의 강연을 모은 〈예술을 위한 희망과 두려움〉을 발간했다. 1878년 그와 가족은 켐스콧 하우스로 이사했고 5년 뒤에는 사회주의를 전도하는 산업지역 여행을 시작해 줄기차게 계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를 사려깊게 대접해 한편에서는 경찰이 군대의 지원을 받아 데모대를 진압하던 '피의 일요일'(1887. 11. 13) 때조차도 런던 트라팔가 광장으로 행진하는 데모대를 이끌던 그에게는 관대했다.

이때 그는 버나드 쇼와 나란히 행진했다. 이무렵 그는 몇년 전에 가입했던 힌드먼 연맹(Hyndman Federation)과 의견충돌이 있어 독자적으로 사회주의 연맹을 결성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출간한 책이 〈The Commonweal〉인데, 여기에는 사회주의의 이상적인 전원사회를 그린 그의 가장 훌륭한 소설 2편인 〈A Dream of John Ball〉(1886~87)과 〈News from Nowhere〉(1890)가 들어 있다.

A Dream of John Ball
A Dream of John Ball

뒤이어 그는 햄머스미스 사회주의자 협회를 창설했고 켐스콧 하우스 옆집에서 매주 강연회를 열었다.

1891년에 시작되어 1898년까지 지속된 이 신문 〈켐스콧 프레스 The Kelmscott Press〉을 위해 모리스는 골든 타입, 트로이 타입, 초서 타입을 고안해 냈다. 켐스콧의 책 대부분이 평이하고 단순한 장식인데 비해 그가 말년에 출판한 〈초서 작품집 The Works of Geoffrey Chaucer〉은 상당히 장식이 많이 된 책이다.

여러 가지 활동으로 건강을 잃은 그는 휴양차 1896년 여름, 노르웨이 항해여행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여행에서 돌아온 그해 가을 숨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문명의 침침한 불결함'에서 벗어나 로맨스와 신화, 서사시로 향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19세기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꼽는다. 그의 동시대 예술 비평가 존 러스킨과 마찬가지로 그는 아름다움을 '사람이 그의 일에서 얻는 기쁨의 결과'라고 정의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인간이 만든 환경 전체를 포함한 것이었다.

그가 살았던 당시에 그는 〈지상의 낙원〉의 저자로 또 벽지, 섬유, 카펫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와서는 정치가나 시인으로서보다는 디자이너로 또 공예가로 유명했으며, 앞으로 오는 시대에는 아마도 사회·도덕 비평가로, 평등한 사회를 위한 개척자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