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카니소스

도데카니소스

다른 표기 언어 Dhodhekanisos
요약 테이블
위치 에게 해 남동부
인구 207,746명 (2016 추계)
면적 2,714.33㎢
대륙 유럽
국가 그리스

요약 터키 남서부 해안 앞바다의 에게 해에 있는 제도. 그리스의 도데카니소스 주를 이루며, 주도인 로도스가 행정중심지이다. 이 섬의 막대한 재정적자는 관광객의 증가로 서서히 감소되고 있다. 이 제도는 고대 그리스의 일부였으며 로도스와 코스는 유서 깊은 섬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와 그뒤에 연합군이 도데카니소스 제도의 앞날에 관해 체결한 비밀조약 때문에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도데카니소스 제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휩싸였다. 도데카니소스 제도에 대한 이탈리아의 통치는 강경하고 효율적이었으나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도데카니소스(Dhodhekanisos)
도데카니소스(Dhodhekanisos)

그리스의 도데카니소스 주를 이루며, 주도인 로도스가 행정중심지이다. 도데카니소스는 '12개의 섬'을 뜻하며 각기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르게 구성된 12개 이상의 섬들에 붙여졌다. 도데카니소스 제도를 이루는 주요섬은 카르파토스(스카르판토)·파트모스(파트모)·카소스(카소)·아스티팔라이아(스탐팔리아)·립소이(리소)·레로스(레로)·칼림노스(칼리노)·니시로스(니시로)·틸로스(피스코피)·칼키(칼키)·시미(시미)·로도스(로디)·코스(코)와 멀리 떨어져 있는 카스텔로리존(카스텔로소)이다(괄호 안은 이탈리아의 명칭).

이 섬의 막대한 재정적자는 관광객의 증가로 서서히 감소되고 있다. 로도스코스를 제외한 도데카니소스 제도는 삼림벌채와 배수시설이 빈약해서 환경조건이 열악한 편이다. 과일·담배·올리브·밀과 같은 농작물은 자체 수요를 충당하거나 수출할 정도로 많이 수확될 때도 있으며 농업 이외에 섬 주민이 주로 행하고 있는 어업·해운업·해면채취와 같은 경제활동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도데카니소스 제도의 주요섬들에서는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제도는 고대 그리스의 일부였으며 로도스와 코스는 유서 깊은 섬이다(→ 아스티팔라이아, 카르파토스, 파트모스). 역사적으로 이 섬들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 모두에 정치적·지리적으로 통일체를 이룬 적이 없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키클라데스 제도도 도데카니소스 지역에 속했다. 도데카니소스 제도는 16세기부터 시작된 투르크의 오랜 통치를 받는 동안 12개의 섬으로 한정되었다. 12개의 섬이 자발적으로 투르크 통치하에 들어온 뒤 투르크는 이 '12개의 스포라데스'를 특별대우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투르크의 통치에 굴복한 보다 크고 자원이 풍부한 로도스 섬과 코스 섬은 특권을 받지 못했다. 1912년 5월 이탈리아-투르크 전쟁 때 이탈리아군이 이카리아(11월 그리스가 점령)와 카스텔로리존(투르크령)을 제외한 섬들을 장악할 때까지 투르크가 통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와 그뒤에 연합군이 도데카니소스 제도의 앞날에 관해 체결한 비밀조약 때문에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도데카니소스 제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휩싸였다. 1919년 체결된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당시 지방자치제가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던 로도스 섬을 제외한 모든 도데카니소스 제도를 그리스에 양도했다. 그러나 차기 이탈리아 정부는 그리스와 맺은 이 조약의 종료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협정을 이행하는 것을 거부했다. 또 터키가 도데카니소스와 카스텔로리존에 대한 모든 특권을 이탈리아에 양도한다는 세브르 조약(1920)의 특별조항을 들먹여 도데카니소스 제도에 대한 이탈리아의 권리를 강화했다. 로잔 조약(1923)으로 이 제도에 대한 이탈리아의 통치권이 확고해졌다.

도데카니소스 제도에 대한 이탈리아의 통치는 강경하고 효율적이었으나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탈리아어가 공용어가 되었고, 1925년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게 되어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 섬들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잠시 영국의 점령하에서 그리스가 통치했다. 1946년 파리에서 열린 외무장관회의에서 그리스에 이양하기로 합의되어 1947년에 정식으로 그리스에게 넘겨졌다.

지도
도데카니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