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형식 논쟁

내용·형식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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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카프가 결성된 후 초기 활동에서 이론적 중심 역할을 했던 김기진박영희 사이에 벌어진 논쟁.

1926년 12월 〈조선지광〉의 문예월평에서 김기진은 박영희의 소설 〈철야〉와 〈지옥순례〉를 두고,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개념에 대한 추상적 설명에 시종했을 뿐이라고 한 후, "소설이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히어 놓은 건축이 있는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서 선전문학도 문학으로서의 제반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며, 소설이 실감을 주는가의 여부는 묘사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영희는 〈투쟁기에 있는 문예비평가의 태도〉(조선지광, 1927. 1)라는 논문을 통해 김기진의 주장이 예술지상적·초계급적·개인주의적이라고 논박하고 레닌의 〈당조직과 당문학〉의 일절인 "문학적 활동은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일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전위로 하여금 발동할 기계 안에 있는 한 작은 치륜(齒輪)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인용해 김기진의 건축설을 부정했다.

김기진이 주장한 바의 논지는 '사상성과 예술성의 통일로서의 문학'에 입각한 것인데, 그는 사상성을 뒷받침할 예술성을 단순히 '실감을 줄 수 있는 묘사'의 수준에 머물러 형식주의적 이해로 그치고 만 한계를 지닌다. 이에 비해 박영희의 논지는 문학예술에서의 당파성을 주장한 것으로, 문예비평가의 계급의식의 견지와 비평에서 무당파성·초계급성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일차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영희는 예술적 당파성의 특수성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다만 프롤레타리아트 대의에 복무하는 하나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기계적으로 주장해 당파성의 이해에 대한 또다른 편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은 표면상 김기진의 자진철회의 형식으로 일단락되었다. 사회주의운동 세력의 연대를 과시하고 불필요한 내부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김복진·이성태 등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김기진에게 자진철회 형식의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기진은 1928년 문학의 대중화 문제에서 이때 다하지 못한 자신의 이론을 다시 개진했다.

내용·형식 논쟁은 그 직후에 있었던 아나키스트와의 논쟁과 더불어, 초기 카프의 활동을 마감하고 광범한 방향전환론 대두의 한 내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프로 문예비평사의 중요한 이론적 결절점이 된다.→ 김기진, 박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