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파

나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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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다양한 활동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에 큰 영향을 준 화가집단.

미술작품이란 바로 한 작가가 자연을 자신의 미학적 은유와 상징들로 종합해내는 활동의 최종 결과물이며 시각적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20세기초의 추상과 비구상 미술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나비파는 일본 목판화와 프랑스 상징주의 그림, 영국 '라파엘전파'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무엇보다도 화가 폴 고갱을 중심으로 한 퐁타방(Pont-Aven)파의 영향이 가장 컸다. 고갱의 가르침을 받은 이 화파의 창시자 폴 세뤼지에가 최초의 나비파 작품인 〈퐁타방 부아다무르의 풍경 Landscape at the Bois d'Amour at Pont-Aven〉(〈부적 Talisman〉이라고도 함, 1888)을 그렸다.

풀 고갱(Paul Gauguin)
풀 고갱(Paul Gauguin)

자신의 작품과 고갱에게 배웠다는 권위를 가지고 풍타방에서 파리에 돌아온 세뤼지에는 자신의 미학적 학설을 신비로운 계시로 받아들이는 친구들을 모아 나비파('예언가', '점술가'를 뜻하는 히브리어 Navi에서 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화가들인 모리스 드니(세뤼지에와 함께 모임의 주요이론가였음), 피에르 보나르, 앙리 가브리엘 이벨, 케르그자비에 루셀, 폴 랑송, 에두아르 뷔야르, 르네 피오가 참여했고 뒤에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카데와 스위스 출신 펠릭스 발로통, 프랑스 조각가 조르주 라콩브와 아리스티드 마욜이 합세했다.

1891년 나비파는 첫번째 전람회를 열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그림이란 군마, 여인의 누드, 몇몇 일화이기 이전에 어떤 질서에 따라 색으로 칠해진 평면이다"고 한 드니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그들은 이런 논리를 포스터나 스테인드글래스·무대장치·삽화 들에도 적용시키려고 노력했으나 모임 안에서 의견충돌과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하여 1899년 해체하고 말았다. 이후 자신들을 내면파(Intimists)라고 부른 뷔야르, 보나르, 그밖에 마이욜만이 계속 이 화풍을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