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

나도향

다른 표기 언어 羅稻香 동의어 나경손, 慶孫, 나빈, 彬, 도향, 稻香
요약 테이블
출생 1902. 3. 30, 서울 청파동
사망 1926. 8. 26
국적 한국

요약 소설가. 초기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이후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대표작으로 <환희>, <젊은이의 시절>이 있다.

호는 도향·소정지옹·은하, 필명은 빈(彬).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차츰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본명은 경손. 아버지 성연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손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병규가 41세에 얻은 아들에게서 회갑에 손자를 얻자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기독교청년회관 안에 있던 공옥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박영희·김기진과는 동년배였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권유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의학보다는 문학에 뜻을 두고 1919년 가족들 몰래 일본으로 건너갔다.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학비를 마련할 수 없어 귀국했다.

1921년 〈계명〉 편집일을 했고, 1922년 홍사용·현진건·이상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는데, 이때 쓴 장편 〈청춘〉을 1926년에 단행본으로 펴냈다.

1924년 가족의 생계를 맡았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죽자,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빈곤해졌다. 1923년 조선도서에 입사한 뒤, 1924년 시대일보 기자로 일했지만 여전히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관이나 친구의 하숙방을 전전하며 무절제한 방랑생활을 계속했다. 1925년말경 다시 공부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1926년 귀국했다. 그해 8월 26일 급성 폐렴으로 2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이듬해 〈백조〉 동인들이 묘비를 세웠다.

문학세계

1921년 4월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펴내는 〈배재학보〉 2호에 〈출학 黜學〉을 발표한 이후,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문학세계는 제3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제1기는 1921~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던 때로 감상적 낭만주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젊은이의 시절〉(백조, 1922. 1)·〈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백조, 1922. 5)·〈환희 幻戱〉(동아일보, 1922. 11. 21~1923. 3. 21)·〈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개벽, 1922. 12) 등이 이에 속한다.

제2기는 1923~24년으로, 현실비판을 내용으로 한 비판적 사실주의 계열에 속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행랑 자식이지만 인간의 존엄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고결한 정신을 보여준 〈행랑자식〉(개벽, 1923. 10),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위선과 비인간성을 비판한 〈자기를 찾기 전〉(개벽, 1924. 3)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제3기는 1925~26년으로, 전기의 경향을 한층 발전시켜 사회문제와 관련된 현실비판의 정도가 더 예리화된 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작 〈벙어리 삼룡이〉(여명, 1925. 7)를 비롯해 〈물레방아〉(조선문단, 1925. 9)·〈지형근 池亨根〉(조선문단, 1926. 3~5) 등이 이에 속한다. 〈물레방아〉는 구성이 잘 되어 있고 인물의 성격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며, 〈벙어리 삼룡이〉는 초기의 감상적 낭만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구원의 의미를 보여준 작품이다.

그밖에 〈추억〉(신민공론, 1922. 1)·〈은화·백동화〉 (동명, 1923. 1)·〈여이발사〉(백조, 1923. 9)·〈꿈〉(조선문단, 1925. 11)·〈뽕〉(개벽, 1925. 12) 등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