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김병로

다른 표기 언어 金炳魯 동의어 가인, 街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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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8. 1. 27, 전북 순창
사망 1964. 1. 13,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항상 후배 법관들에게 청렴과 강직을 강조한 그는 소신있는 법관, 강직한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철저히 지켰으며, 해박한 법률지식의 소유자였다. 민족정기 앙양과 인권옹호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북풍회의 창설을 비롯하여 이상재·안재홍 등과 함께 신간회에 관여하여 직접적인 민족항쟁운동에 나섰다.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191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45년 한국민주당의 대표총무위원을 지냈고, 이듬해 남조선 과도정부의 사법부장, 정부수립 이후에는 초대 대법원장 겸 법전편찬위원장으로서 법질서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김병로(金炳魯)
김병로(金炳魯)

호는 가인.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한 후 191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16년 경성법학전문학교 조교수, 1917년 보성전문학교 강사를 거친 다음, 1919년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이 기간중 조선변호사협회 회장과 조선인변호사회장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법정투쟁을 하였다.

3·1운동 사건을 비롯하여 단천사건, 간도사건, 정의부사건, 광복단사건, 105인사건, 흥사단사건, 안창호사건 등 매년 100여 건에 달하는 변론으로 독립투사 구출에 진력하였다. 또한 민족정기 앙양과 인권옹호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북풍회의 창설을 비롯하여 이상재·안재홍 등과 함께 신간회에 관여하여 직접적인 민족항쟁운동에 나섰다(→ 민족해방운동).

1945년 한국민주당의 대표총무위원을 지냈고, 이듬해 남조선 과도정부의 사법부장, 정부수립 이후에는 초대 대법원장 겸 법전편찬위원장으로서 법질서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55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62년에는 문화훈장 대한민국장과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국민당을 창당하는 등 재야 정당통합에 심혈을 기울였다.

항상 후배 법관들에게 청렴과 강직을 강조한 그는 소신있는 법관, 강직한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철저히 지켰으며, 해박한 법률지식의 소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