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기자

다른 표기 언어 箕子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기자조선, 한국

요약 기자는 기자조선의 시조로 알려져있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기자조선이란 기자동래 전설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내용은 중국의 은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에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빼앗자 현인 기자가 BC 1122년 조선으로 건너와 기자조선을 건국하고 범금8조를 가르쳤으며, 무왕에 의해 조선왕에 봉해져 단군조선을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에는 기자가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받들어졌고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제사를 행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기자를 성현으로 숭배하는 풍조가 유행하는 등 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기자동래설은 당연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졌다.

이름은 서여(胥餘)·수유(須臾). 기자조선이란 기자동래(箕子東來) 전설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내용은 중국의 은(殷)·주(周) 교체기에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빼앗자 현인(賢人) 기자가 BC 1122년 조선으로 건너와 기자조선을 건국하고 범금8조를 가르쳤으며, 무왕에 의해 조선왕에 봉해져 단군조선을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에는 기자가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받들어졌고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제사를 행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기자를 성현으로 숭배하는 풍조가 유행하는 등 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기자동래설은 당연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졌다.

기자동래설은 중국 선진(先秦)시대 문헌까지만해도 기자와 조선이 별개로 취급되었다가, 진(秦)·한(漢) 대 이후에 연결되어 동래전설이 등장하니만큼 사실로 인정하기 힘들다. 그리고 1102년(고려 숙종 7)에 비로소 건립되었다는 기자묘중수기적비(箕子墓重修記蹟碑)의 사료로 보아, 당시의 사대사상에 의해 조작된 설로 여겨진다. 지금은 기자 자체를 본래 왕을 뜻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칭호였다고 해석하는 견해, 기자조선은 부정하지만 그 기간을 예맥족이 근간이 된 예맥조선으로 설정하는 견해, 동이족 계통인 기자족의 이동과 관련하여 기자전설을 이해하려는 견해 등이 제기되어 있다.

3번째 견해는 다시 기자족이 평양지역까지 도착했다는 것을 전제로 기자조선을 고조선의 한 시대로 인정하는 견해와 은의 변방 소국인 기자국이 고조선 변경지역으로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기자동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