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동이

다른 표기 언어 東夷

요약 중국인은 주변의 종족을 방위별로 나누어 동이·서융·남만·북적으로 구분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에는 동이 여러 종족의 풍토·지리·역사를 기술하였다.
BC 3세기말까지 중국인이 인식하고 있는 동이족은 산둥 반도와 화이수이 강, 쓰수이 강 지역을 중심으로 발해만 일대에 거주한 종족을 의미했으나, 진의 통일 후에는 발해만 일대와 만주·한반도·일본에 거주하는 종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중국문헌에 나오는 동이를 우리역사와 관련시켜 여러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학자들 간에 동이의 종족적 특성, 분포지역, 문화단계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인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여 주변의 종족을 방위별로 나누어 지칭했는데 동이·서융·남만·북적이 그것이다. 이같은 호칭은 중국에서 발달한 음양오행사상과도 관계가 있다. '이'(夷)라는 명칭은 은의 갑골문자에 이미 등장하고 있는데 은대의 '이'는 황허 강[黃河] 중류 이동의 지역인 반도 및 화이수이 강[淮水], 쓰수이 강[泗水] 일대의 동방종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서주 때에는 이 일대의 종족을 동이·남이·회이로 나누어 지칭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동방의 '이'를 견이·우이·방이·황이·백이·적이·현이·풍이·양이 등 아홉으로 분류하여 파악하기도 했다.

중국인의 동이에 대한 인식은 다른 주변 민족에 비해 뚜렷하여 선진문헌에서부터 비교적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라는 글자의 어원에 대하여 〈설문해자 說文解字〉는 대궁, 즉 활을 잘 쏘는 것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역사에서 9개의 해를 떨어뜨려 중국을 구했다는 전설상의 인물인 예(羿)나, 한때 동방의 30국을 아우르고 서주를 위협했던 활의 명인 서언왕이 동이족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의 동이족에 대한 활과 관련한 인식은 매우 뚜렷했던 것 같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그 이름이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진문헌 중에는 동이를 '동방군자의 나라'로 표현하기도 하여, 중국인의 동방에 대한 외경을 전하기도 한다(→ 중화사상).

중국의 고대 역사서에서는 중국 주변민족에 대해 기록한 사이전의 일부로 동이전을 설정하여 동이 여러 종족의 풍토·지리·역사를 기술하여, 동이에 대한 역대 중국인의 인식을 남기고 있다. 〈사기 史記〉 를 비롯하여 〈한서 漢書〉·〈후한서 後漢書〉·〈삼국지 三國志〉·〈신당서 新唐書〉에 이르는 중국 사서의 동이 관계 기록은 우리 고대사연구에 관한 기본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중국인의 동이족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이것은 중국인의 지리적 인식증대 및 중국의 영역확대와 관련이 깊었다.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BC 3세기말까지 중국인이 인식하고 있는 동이족은 산둥[山東] 반도와 화이수이 강, 쓰수이 강 지역을 중심으로 발해만 일대에 거주한 종족을 의미했으나, 진의 통일 후에는 중국에 편입된 영역을 제외한 발해만 일대와 만주·한반도·일본에 거주하는 종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동이족은 주로 한(韓)·예·맥을 지칭하게 되었다. 〈삼국지〉와 〈후한서〉 동이전에서는 만주 일대의 여러 종족 외에 일본열도의 왜도 동이족의 범주에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중국문헌에 나오는 동이를 우리역사와 관련시켜 여러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저술하면서 동이족에 관한 중국의 옛 기록을 모두 모아 동이총기로 정리하고 단군조선에 앞선 우리 민족의 시원 기록으로 삼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학자들간에 동이의 종족적 특성, 분포지역, 문화단계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산둥 반도에서 한반도에 걸친 황해·발해만 일대를 동이족의 '동방문화권'으로 설정하여 그 실체 규명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