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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어떤 단체나 군대, 관공서, 또는 개인을 상징하기 위해 천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표식.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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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원
  2. 형태와 기능
  3. 국기
기

여러 가지 모양이 있지만 대개는 직4각형이고, 한쪽 면을 깃발끈에 매달아놓는다. 깃대에 닿는 기의 세로폭 부분을 호이스트(hoist)라 하며 가장자리로 향하는 가로폭을 플라이(fly)라고 하는데 보통 플라이가 호이스트의 길이보다 길다.

기의 종류는 여러 형태와 목적에 따라 컬러(colours), 스탠더드(standards), 배너(banners), 엔사인(ensigns), 펜던트(pendants) 또는 페넌트(pennants), 페넌(pennons), 가이든(guidons), 버지(burgees) 등이 있다.

원래 전쟁에서 주로 쓰였던 기는 지금도 지도력을 상징하거나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고 집합장소를 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오늘날에는 기능이 더욱 확대되어 신호·장식·표시 등으로 널리 쓰인다. 식별을 위한 목적으로 기를 사용할 때는 바람에 자유롭게 나부끼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가벼운 재료가 많이 쓰인다. 또한 양면의 도안이나 형태는 똑같이 만들며 문자는 대부분 새기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많이 이용한다.

어떤 색이나 도안도 쓸 수 있으나 유럽에서는 보통 문장학의 관례를 따른다. 그래서 '금속' 즉 금이나 은을 나타내는 황색 또는 백색을 나란히 쓰지 않으며, 반대로 색과 색을 나란히 쓸 때는 반드시 금속색을 중간에 끼워넣는다. 그러나 바티칸 시의 국기는 이 규칙에서 벗어난다.

기원

기라고 할 만한 것이 처음 등장한 곳은 고대인도나 중국이었음이 확실하다.

중국에서는 BC 1122년경 주(周)의 창시자가 기를 앞세우고 다녔다고 하며, AD 660년 어떤 제후가 왕 앞에서 기를 낮추지 않아 벌을 받았다고도 한다. 중국 기에는 주작(朱雀)·백호(白虎)·청룡(靑龍)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전차로 운반해 점령한 도시의 성벽에 꽂았다. 왕실기에는 왕권의 모든 속성이 부여되어 통치자 자신과 동일시되었으므로 왕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경의를 표하면서 다루어야 했다.

따라서 기수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었다. 기를 내린다는 것은 항복을 뜻했기 때문에 보통 기는 장군에게 맡겨졌으며, 왕이 기와 자신을 동시에 드러내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기는 똑같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며 전차나 코끼리로 운반되었다. 전쟁에서는 기가 첫번째 공격목표였고, 기가 쓰러지면 패배나 혼란을 뜻했다. 인도의 기는 주홍색 또는 초록색의 3각형 모양에 금으로 수를 놓고 금술을 달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와 아시리아에서 쓰이던 스탠더드에서 인도와 중국 기의 기원을 찾는다면, 기둥에 매달았던 장식으로부터 기가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스탠더드란 원래 금속으로 동물형상 등을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달았던 단단한 물체를 뜻한다. 실제로 인도의 깃대 가운데에서 기 자체에 그려진 도안과 유사한 형상의 조각을 얹은 것이 발견되는 걸 보면 그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한편 무굴 제국에서는 기 이외에도 야크의 꼬리나 예식용 우산 같은 다른 물건을 보다 특별한 왕의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인도에서도 역시 중국처럼 기를 신호용으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1542년에 이미 휴전의 표시로 백기가 쓰인 예가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 사용되던 기는 곧 미안마·타이·동남아시아 등지로 전파되었다. 흰색이나 노란색 또는 검은색 비단 바탕에 금실로 코끼리·황소·쇠물닭 등을 수놓은 기가 등장했다. 전쟁에 대한 타이의 기록 가운데는 행진이 시작되면서 기가 펄럭이는 인상을 묘사한 것이 남아 있다.

기를 유럽에 전파한 것은 사라센족(族)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우상과 동일시할 수 있는 어떠한 상징의 사용도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교리는 기의 도안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기 이슬람 역사에 자주 언급된 기의 형태는 인도의 기를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형태가 아주 단순해져 검은색이나 흰색, 빨간색 같은 단색으로 되었다. 마호메트 군대의 깃발 색깔로 추측되는 검은색은 복수의 색이다.

AD 746년(AH 129) 아바스 왕조는 검은색 기를 썼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마이야 왕조는 흰색 기를, 하와리지 왕조는 빨간색 기를 채택했다.

그리고 파티마 왕조의 색이었던 초록색은 마침내 이슬람의 색이 되었다. 1250년경 오스만 투르크는 BC 9세기경, 또는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아시리아에서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지던 초승달 표시를 거의 그 모습대로 재현해서 사용했다(→ 초승달 기장). 그때부터 초승달은 주위에 별을 그려넣거나 혹은 독자적으로 공식적인 이슬람의 상징이 되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기'를 채용한 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였다.

당시의 많은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상징하는 기를 이용해 영토를 나타냈다. 그 예가 13세기 영국에서 쓰이던 성 조지의 십자가이다. 중세 말기에 이르자 기는 나라·왕·단체·도시·길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길드의 기에는 뚜렷한 그림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3개의 흰 초가 그려진 검은색 기는 프랑스 베외의 양초 제조업자들을 나타냈다.

형태와 기능

유럽에서는 기의 종류가 형태나 목적에 따라 스탠더드·배너·가이든·페넌·스트리머 등으로 나뉜다.

그밖에도 대부분 보다 복잡한 형태로 만들어진 다양한 기들이 각각 어떤 개인이나 가족, 지방을 상징하고 있다. 주요유형이었던 스탠더드는 가장 규격이 큰 기로서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켜 세운다. 이 기는 주로 전투가 시작되기 전이나 포위기간 또는 식전(式典)행사나 마상시합에서 주요인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군주를 상징하는 경우 그가 실제로 기거하고 있는 왕궁·성·의식장소·천막 또는 배를 표시했다.

처음에는 대귀족들도 스탠더드를 개인적 표식으로 사용했다. 이것의 본래 모양은 길고 플라이를 따라 점점 가늘어져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편, 배너는 배너릿 기사작위 이상의 왕족이나 귀족전사만이 지닐 수 있었다. 배너는 정4각형 또는 직4각형이었으며 스탠더드와는 달리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배너에도 개인이나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紋章)이 새로 그려졌다.

프랑스어 'guyd-homme'에서 유래한 기동(guidon)은 스탠더드와 비슷하지만 플라이가 둥글거나 2개의 둥근 제비꼬리 모양이었다. 이것은 기사 작위밖에 받지 못해 배너를 사용할 자격이 없는 지도자가 전쟁에서 가지고 다녔다. 한편, 페넌은 3각형의 조그만 기로서 각 기사들이 창에 달고 다녔다.

이 기를 사용한 목적의 하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트럭의 꼬리판보다 길게 늘어지는 기둥 또는 장대 같은 화물을 트럭으로 운반할 때 그 끝에 빨간색 기를 매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적을 위협하거나 지위를 표시하는 기능도 했다. 지금 펜던트나 페넌트로 알려져 있는 스트리머는 길고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형태이다.

길이는 18~55m, 호이스트의 폭은 약 7m이고 끝이 2갈래로 갈라진다. 길이가 길어서 거의 바다에서만 쓰였는데 15세기에는 군함 전투장루(檣樓)의 기둥에 달았으며 이후에는 활대 끝이나 중간돛대에 달았다. 결국 이것은 군함과 상선을 구별하는 데 쓰이면서 좀더 세부적으로는 임무수행중인 군함과 항구에 정박중인 군함을 구별하는 역할도 했다.

영국해군의 흰색 페넌트는 호이스트 부근에 성 조지 십자가가 그려져 있으며 군함이 임무수행중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선장이 명령을 내릴 때 게양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기가 만들어졌다. 지난날 검은색 기는 해적의 상징이었으며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노란색 기는 전염병의 신호로 쓰인다. 배 안에 황열병이나 콜레라 또는 기타 전염병이 퍼져 있는 것을 알려야 할 경우 노란 기를 게양하는데, 이것은 검역을 마칠 때까지 계속 달아두며 검역소에도 역시 노란 기를 게양한다.

흰색 기는 보편적으로 휴전을 뜻한다.

바다에서 기를 거두거나 낮추면 항복을 의미한다. 한편, 어떤 나라의 기가 다른 나라의 기보다 위에 있으면 위에 있는 나라가 승리한 것을 나타내므로 평화시에 한 나라의 기를 다른 우호적인 나라의 기 위에 게양한다는 것은 모욕이다. 각 국기는 그 나라의 깃대에 게양해야 하며 명예와 존경을 표시할 때는 기를 내렸다가 다시 올린다.

바다에서 돛대 끝에 달려 있는 기를 천천히 내렸다가 빠르게 제자리로 올리는 행위는 배들이 서로 경의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군대나 국가원수가 다른 사열관 앞에서 행진할 때는 부대기를 낮추어서 경의를 표시한다. 반기(半旗)는 보편적으로 애도의 상징이다. 또 배가 조난당한 것을 표시할 때는 함기의 위아래를 바꾸어 게양한다.

국기

태극기
태극기

국기의 색과 디자인은 대부분 임의로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문화·종교 등에서 유래한다.

많은 국기가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이들 '기가족'은 때때로 동일한 전통 또는 지리적 관계로 연결된다. 유럽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기는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를 그린 기로 처음에는 십자군전쟁에서 널리 쓰였다. 영국국기인 유니언 잭 외에도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덴마크·그리스·스위스에서 이 기를 쓰고 있다. 12~13세기 유럽에 문장학이 소개되면서 각 왕가에서는 문장을 채택했으며 그것이 곧 그들 국기의 기본형을 이루었다.

현대 국기에서 이같은 문장도안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문장들에 사용되었던 색들은 아직도 폴란드·벨기에·독일·스페인·헝가리·룩셈부르크·모나코 등의 국기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국기와 산마리노, 리히텐슈타인 등 작은 나라들의 국기는 지금도 문장도안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아주 잘 알려진 유럽의 줄무늬 국기 가운데는 네덜란드의 빨간색-흰색-파란색의 기가 있다.

네덜란드 국기
네덜란드 국기

이 기는 스페인과의 오랜 독립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 색과 함께 자유와 공화정을 연상시켰다. 줄무늬를 가로에서 세로로 바꾸기는 했지만 1789년 혁명 이후의 프랑스가 같은 색을 채택함으로써 이같은 인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독립한 미국이 그 3가지 색을 성조기의 색으로 채택한 것은 과거 영국과의 관계와 유니언잭의 색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었다. 유럽과 중앙·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은 그들 고유의 3색을 선택하여 프랑스 국기에 구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평등·박애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소련과 알바니아의 국기는 공산주의혁명의 전통적 상징인 빨간색을 써서 만들었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도 역시 빨간색 기를 사용한다.

베트남 국기
베트남 국기

이슬람교가 우세한 중동에서는 색의 선택범위도 이슬람의 4가지 전통색인 빨간색·흰색·초록색·검은색으로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이 이들 중 1가지 색을 쓰거나 3색을 조합해서 사용하는데 그 가운데 터키·알제리·튀니지 등의 국기에는 별과 초승달이 주제로 그려져 있다.

파키스탄과 말레이시아 등 기타 주요 이슬람 국가들 또한 이슬람 신앙을 나타내는 표시로 별과 초승달 도안을 쓰고 있다.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 있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국기들은 대부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서로 가족과 같은 강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국기는 영국연방국가들의 것과 이전에 프랑스의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의 것 등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전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의 국기는 3색줄이 세로로 나 있고 일반적으로 초록색·노랑색·빨강색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영국연방국가의 국기는 3색줄이 가로로 나 있고 주로 초록색·파란색·검정색·흰색을 사용했다.

아시아 각국의 국기형태는 놀랍도록 다양한데 이는 유럽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각 나라의 상징이 독특하게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단색 바탕에 종교나 정치적 상징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일본·네팔·중화민국의 국기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도안이 그려져 있고 인도의 국기에는 바퀴가, 부탄의 기에는 용이, 스리랑카에서는 칼이 각각 그려져 있다. 한국과 몽골은 음양무늬를 사용했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영국 해군기인 예비함대기를 변형시켜 쓰고 있다.

서반구의 캐나다는 나라의 독특한 상징으로 단풍잎을 쓴다. 과거에 정치적 결합을 맺었던 중앙아메리카의 다섯 나라는 오래전부터 중앙아메리카를 상징했던 파란색-흰색-파란색 기를 기념하기 위해 약간씩 변형을 주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노랑색-파란색-빨강색 3색기가 거의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나라들이 동일한 역사적 전통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나 프랑스 국기의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에 대한 관심은 그저 만들거나 사용하는 차원을 넘어 더욱 크게 확대되었다.

정치학자나 역사학자, 사회학자 등은 기를 특정시대 및 지역문화를 나타내는 인공물로 인식한다. 기의 역사·상징성·예절·디자인·제조법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기학(vexillology:군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vexillum'에서 유래)이다. 기에 대한 연구는, 많은 책들이 발행되고 국제기학협회연맹과 그 회원들의 노력이 기울여짐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