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전

국순전

다른 표기 언어 麴醇傳

요약 지은이는 술의 내력·성질·효능·폐단, 그리고 그에 대한 세론과 후일담을 의인전기라는 형식으로 나타냈다. 평결부에 사신의 말을 빌어 "왕실이 미란에 빠져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중국 진나라 때의 문인으로 일명 山濤라고도 함)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도다"라고 하여 신하된 자의 소임과 중신의 선임이나 천거의 신중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무인집정기에 임춘이 처했던 불우한 처지에서 비롯된 비판적·풍자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당시 무신들의 타락상과 세력을 제멋대로 휘둘렀던 것을 고발·비판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임춘의 유고집인 〈서하선생문집〉과 〈동문선〉에 실려 있다.

내용은 서두·행적부·평결의 3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순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며 그 조상은 농서(隴西) 사람이었다. 그의 90대조인 모(牟 : 보리)는 후직(后稷)을 도와서 백성들을 먹여 살린 공이 있었다. 이에 중산후(中山侯)로 봉해져 식읍(食邑) 일만 호를 받아 성을 국씨라 하였다. 국순은 도량이 크고 넓어 자못 사람의 기운을 더해주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국처사(麴處士)라고 불렸는데,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 그를 흠모하여 성대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사랑하여 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태위(太尉) 산도(山濤)가 "천하창생을 그르치는 자는 이 사람밖에 없다" 하여 청주종사(淸州從事)로 쫓겨나고 말았다. 뒤에 평원독우(平原督郵)가 된 국순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자, 관상을 잘 보는 이가 있어 "그대는 붉은 기운이 얼굴에 있어서 반드시 귀한 자리에 오를 터이니 마땅히 좋은 값을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대로 국순은 진(陳) 후주(後主) 때 크게 쓰이기도 했으나, 마침내 나라를 어지럽혔다 하여 내침을 당하고 갑자기 병이 들어 하루 저녁에 죽고 말았다. 그는 아들이 없었으나, 그의 족제(族弟) 청(淸)이 뒷날 당(唐)에서 벼슬하여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는가 하면 자손이 다시 중국에서 번성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술의 내력·성질·효능·폐단, 그리고 그에 대한 세론(世論)과 후일담을 의인전기(擬人傳記)라는 형식으로 나타냈다. 평결부에 사신(史臣)의 말을 빌어 "왕실이 미란(迷亂)에 빠져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 : 중국 진나라 때의 문인으로 일명 山濤라고도 함)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도다"라고 하여 신하된 자의 소임과 중신(重臣)의 선임이나 천거의 신중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무인집정기에 임춘(林椿)이 처했던 불우한 처지에서 비롯된 비판적·풍자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당시 무신들의 타락상과 세력을 제멋대로 휘둘렀던 것을 고발·비판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임춘의 유고집인 〈서하선생문집 西河先生文集〉과 〈동문선 東文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