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교토

다른 표기 언어 Kyoto , 京都
요약 테이블
위치 일본 혼슈 중서부
인구 1,450,000명 (2021년 추계)
면적 827.83㎢
언어 일본어
대륙 아시아
국가 일본

요약 일본 혼슈 중서부에 있는 교토부 부청소재지. 산업도시 오사카에서 북동쪽으로 47㎞, 문화도시인 나라의 북쪽으로도 비슷한 거리 만큼 떨어져 있으며 긴키지방의 중심도시이다. 794년에서 1868년까지 1,000년 이상 황궁이 있던 일본의 수도였으며, 불교문화와 직물업과 요업 등의 전통산업을 선도하여 왔다. 소비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는 상업, 특히 소매업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관광은 헤이안 시대 이래의 수많은 사적과 사찰 등이 주축을 이룬다. 면적 827.83㎢, 인구 1,450,000(2021 추계).

목차

접기
  1. 역사
  2. 자연환경
  3. 행정구역과 인구
  4. 산업
  5. 교통
  6. 관광과 문화
교토(京都)
교토(京都)

산업도시 오사카[大阪]에서 북동쪽으로 47㎞, 문화도시인 나라[奈良]의 북쪽으로도 비슷한 거리 만큼 떨어져 있으며 긴키[近幾]지방의 중심도시이다.

794~1868년까지 1,000년 이상 황궁이 있던 일본의 수도였으며, 불교문화와 직물업·요업 등의 전통산업을 선도하여 왔다. 현재에는 오사카·고베와 함께 게이한신 공업지대(오사카·고베·교토를 포함하는 일본 제2의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자 국제적인 문화·관광 도시이다.

지도
교토

역사

교토
교토

교토는 일찍부터 개발되었던 지역으로 주변에서 야요이 시대[彌生時代:BC 300~AD 300경]와 고분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교토 분지의 내부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의 발전기부터로, 중국과 한반도에서 온 귀화씨족들에 의해서였다.

하타우지[秦氏]·오노[小野]·이즈모[出雲] 등의 귀화씨족들은 이곳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세력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절·신사 등을 지어 이 지역을 발전시켜 갔다. 794년 간무[桓武:737~806] 덴노는 나라[奈良]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이때 세워진 수도가 헤이안쿄[平安京]로 중국의 장안을 모방하여 건설된 도시였다(→ 헤이안 시대). 이후 교토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초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일본의 황실이 자리잡았고 문화·경제·종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85~1333]에는 간토지방[關東地方]의 가마쿠라에 쇼군[將軍]이 바쿠후[幕府]를 설치하여 통치를 하였으므로 교토의 정치적 비중은 다소 약화되었다. 그러나 상점이나 도소[土倉:중세의 전당포] 등이 활기를 띠는 등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많은 사원들이 건설되고 정토종·선종 등 여러 종파의 불교가 발전되었다. 즉 전대의 우아한 귀족문화에, 상층 무사층을 중심으로 한 강건한 무가문화가 가미되어 발전되어갔다.

이후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336~1573]에 다시 이곳에 바쿠후가 설치됨으로써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되찾았다. 이 시대에 직물업자들이 교토의 니시진[西陣]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이는 이후 견직물 산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무사들에 대한 통제책의 일환으로 지방의 유력 무사들을 교토에 이주시켰기 때문에, 교토의 소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을 비롯하여 노[能:일본의 전통연극]·한문학·서화·다도·꽃꽂이·통속소설 등이 성행하여 독특한 일본적인 문화를 형성해갔다. 그뒤 오닌[應仁]의 난(1467~1477) 때 무참히 파괴되었다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에 의해 통일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발전하기시작했다.도쿠가와시대[德川時代:1603~1867]에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 바쿠후가 설치되면서부터 바쿠후에서 교토에 두었던 교토쇼시다이[京都所司代]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정치적 중심은 에도였지만 교토는 에도·오사카와 함께 '삼도'라고 불리며 발전해갔다. 또한 포목점 등을 중심으로 한 대상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미쓰이 구미[三井組], 시마다 구미[島田組], 오노 구미[小野組] 등의 대금융업자도 등장했다. 도쿠가와 시대 중기부터는 요업도 발전했다. 도쿠가와 시대 말기 존왕파가 대두되어 덴노의 위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교토는 존왕운동과 반바쿠후 운동[反幕府運動]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유행하기도 하였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뒤인 1869년 도쿄로 천도함에 따라 교토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고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문물과 교육제도 등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여 문화·교육 도시로 발전했으며 새로운 산업계획을 추진하여 근대적 산업도시로 변모해갔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다행히 폭격을 받지 않아 전통적인 유적·유물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교토에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자연환경

교토는 교토 분지(야마시로 분지)의 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삼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오사카 방면의 남서쪽과, 나라로 이어지는 남쪽만이 트여 있어 철도·도로 등이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완만히 낮아지는 지형으로 평균 해발고도는 55m 정도이다.

시의 북서쪽에는 아타고 산[愛宕山:924m]이, 북동쪽에는 유명한 엔랴쿠 사[延曆寺]가 있는 히에이 산[比叡山:848m]이 있어 자연적인 관문 역할을 한다. 히에이 산의 동쪽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 호[琵琶湖:672㎢]가 있어서 교토의 용수나 발전 등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시의 서쪽에는 가쓰라가와 강[桂川], 북동쪽에는 가모 강[賀茂川], 남쪽에는 우지 강[宇治川]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강들은 시의 남서쪽에서 합류하여 요도가와 강[淀川]을 이룬 후에 오사카 만[大阪灣]으로 흘러들어 간다.

기후는 일본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기후로, 덥고 습한 여름과 추운 겨울로 특징지어진다. 연평균기온은 15℃, 가장 더운 8월평균기온은 27℃, 가장 추운 1월평균기온은 3℃정도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575㎜로 비는 6월이나 7월에 3~4주간 계속되는 우기에 집중된다.

행정구역과 인구

교토는 교토 분지 북동부에 건설되었던 헤이안쿄에서 출발하여, 그 시역[市域]이 확대되어 왔다.

1889년 시가 되었을 때의 면적은 29.77㎢에 불과하였고, 1930년까지 가미교[上京]·시모교[下京] 2개 구(區)만이 있었다. 1931년에 시역이 확대되어 이전의 2개의 구 외에 사쿄[左京]·우쿄[右京]·나카교[中京]·후시미[伏見]·히가시야마[東山] 5개 구가 신설되었고 면적은 288.65㎢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확장이 계속되어 북부의 산지와 남부의 지역들이 편입되어 면적은 610.6㎢로 늘어났다. 행정구역도 1955년 기타[北]·미나미[南] 2개 구가 신설되었고, 1976년에는 니시교[西京]·야마시나[山科] 2개 구가 신설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위와 같지만 일반적으로 라쿠추[洛中]·라쿠토[洛東]·라쿠호쿠[洛北]·라쿠세이[洛西]·라쿠난[洛南] 등 5개 구역으로 나누어 부른다.

인구 규모에서는 일본에서 6번째의 도시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시의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지만 점차 교외로 확산되어가는 추세이며 오사카 등으로 통근하는 인구도 점차 늘고 있다. 한국인·중국인 등을 비롯해 외국인들도 상당한 숫자에 달하며 일본의 전통적인 천민집단인 부라쿠민[部落民] 문제도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산업

소비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는 상업, 특히 소매업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소매업에서도 직물·의류·식료품이나 관광지로서의 토산품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나카쿄 구[中京區]가 상업의 중심지이다. 특히 일본에서 견직물 도매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관광도시답게 관광 관련산업도 발달해 있는데, 호텔·여관 등 숙박업과 기온[祇園] 등지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유흥업도 유명하다. 그외에 운수·통신·금융·보험 등 3차산업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제조업은 중·소규모의 공장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은 가내공업적으로 이루어지거나, 가족경영이 많으며 전통적인 니시진 비단이나 공예품 등이 주축을 이룬다. 업종별로 보면 섬유, 식품, 목재, 금속, 전기·기계기구, 일반 기계기구 등이 많이 생산된다. 공업은 교토 남서부의 라쿠난 공업지대가 중심이 되고 있는데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게이한신 공업지대의 연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외에 전통공업으로서 도자기업·양조업 등도 유명하다.

교통

교토는 옛날부터 교통이 발달한 곳이었다. 도쿠가와 시대에는 도카이도[東海道]의 기점이었으며, 지금도 일본의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대부분 교토를 지나고 있다. 신칸센[新幹線]이나 도카이도 본선[東海道本線] 등 간선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산인 지방[山陰地方:주코쿠 지방에서 동해에 면해 있는 지방]이나 나라 등지, 그리고 교토 부 내의 도시를 잇는 철도교통도 발달했다. 또 메이신 고속도로[名神高速道路:나고야와 고베를 잇는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많은 도로들이 오사카를 비롯한 외부지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로를 이용한 교통편도 있다.

관광과 문화

관광은 헤이안 시대 이래의 수많은 사적과 사찰 등이 주축을 이룬다. 1,500여 점 이상의 국보나 중요문화재 외에도 교토고쇼[京都御所], 니조 성[二條城], 히가시혼간 사[東本願寺] 등 수많은 건축물과 빼어난 자연경관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몰려오게 하고 있다.

노[能]·가부키[歌舞伎] 공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예술도 훌륭하다. 해마다 열리는 마쓰리[祭リ: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5월의 아오이마쓰리[葵祭], 7월의 기온마쓰리[祇園祭], 10월의 지다마쓰리[時代祭]가 유서 깊다.

1868년 학구제가 실시된 뒤로 교토는 일본 최초의 중학교와 여학교가 설립되었던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수많은 국·공립 및 사립 교육기관이 있으며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교토대학,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등이 유명하다. 국립근대미술관, 시립미술관, 교토 국립박물관 등 문화시설들이 즐비하여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교토 국립박물관
교토 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