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전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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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돈의 사용과 유통을 둘러싼 고사들을 흥미있는 인간사로 의인화한 이 작품은 단순히 돈에 얽힌 일화를 평면적으로 진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겉은 원만한 듯 보이지만 속은 모가 나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신하를 풍자하고 있다. 평결부에서 "만일 원제가 진작 공우가 한 말을 용납하여 하루 아침에 다 죽여버렸던들 가히 후환을 없앴을 터인데, 오직 억제만 해서 후세에 폐단을 끼치게 했다"고 하여 벼슬자리에 올라 나라를 망치고 있는 무리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비판의식은 무신집권기 때 무신들에 의해 심한 배척을 받아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지은이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임춘의 유고집 〈서하선생문집〉과 〈동문선〉에 실려 있다.

공방(孔方)의 자(字)는 관지(貫之)이며 그 조상은 일찍이 수양산에 숨어 살아 세상에 쓰여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 천(泉)에 이르러 비로소 주(周)의 대재로 나라의 부세를 맡게 되었다. 공방의 사람됨은 밖은 둥글고 안은 모가 났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한나라 때 벼슬을 하여 홍로경이 되었다.

욕심이 많고 염치가 없는 그가 재물과 씀씀이를 도맡게 되니 백성들이 화(貨)를 중하게 여겨 근본인 농업을 버리고 상업만을 좇게 되는가 하면, 벼슬을 팔고 사는 것이 손바닥에 있으므로 벼슬하는 자들이 모두 절개를 굽히게 하는 등 폐단이 심했다. 이에 원제(元帝) 때, 공우(貢禹)가 상소를 올려 그 폐단을 간해 드디어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술(術)이 얼마 되면 다시 일어날 것이라며 태연했다.

그리고 당(唐) 때 유안(劉晏)이 탁지판관이 되어, 나라의 씀씀이가 넉넉하지 못한 것을 보고 임금께 청하여 다시 공방의 술을 써서 나라의 씀씀이를 편하게 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공방이 죽은 뒤여서, 그의 문도들을 찾아 써서 다시금 개원·천보 연간에는 크게 그 술(術)이 성행하게 되고, 그는 조의대부소부승에 추증되었다. 뒷날 소식·사마광이 그 법을 폐할 것을 아뢰어 세력이 조금 줄어들고, 공방의 아들 윤(輪)은 경박하여 세상의 욕을 먹었는가 하면 장물죄가 드러나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돈의 사용과 유통을 둘러싼 고사들을 흥미있는 인간사로 의인화한 이 작품은 단순히 돈에 얽힌 일화를 평면적으로 진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겉은 원만한 듯 보이지만 속은 모가 나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신하를 풍자하고 있다.

평결부에서 "만일 원제가 진작 공우가 한 말을 용납하여 하루 아침에 다 죽여버렸던들 가히 후환을 없앴을 터인데, 오직 억제만 해서 후세에 폐단을 끼치게 했다"고 하여 벼슬자리에 올라 나라를 망치고 있는 무리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식은 무신집권기 때 무신들에 의해 심한 배척을 받아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지은이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임춘의 유고집 〈서하선생문집 西河先生文集〉과 〈동문선 東文選〉에 실려 있다.